Page 80 - 남해화학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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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화학 50년사
공사는 스위스의 비아찌가 기술 제공과 더불어 기본설계, 기자재 공급, 시운전 자
문, 성능보장 등을 담당했으며, 제일종합기술과 일신에서 상세설계와 건설공사를
맡았다. 1996년에 착공하여 1998년 6월 완공과 함께 시운전을 실시했다. 이로써 남
해화학의 DNT 생산량은 연간 5만 5,000톤에서 6만 3,000톤으로 증가했다.
한편 제2DNT공장 용량증대사업과 함께 질소 저감시설을 설치하고 DNT공장 폐
수 중에 함유된 질소 함량을 줄이는 사업도 병행했으며, 이를 통해 용량 증대에 따
르는 폐수 발생량 증가에 대응하는 한편 1997년도부터 시행되는 폐수 중 질소에
대한 법 규제에도 대비할 수 있었다.
MNT공장 건설, 남해화학이 정밀화학에 첫걸음을 내디딘 DNT공장에 이어 두 번째 정밀화학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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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화학의 뿌리를 내리다 으로 MNT(Mononitrotoluene)공장의 건설에 나섰다. 이번에도 국내 최초의 도
전이었다. MNT는 염료 및 안료에 사용되는 화학제품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폭
약, 농약, 염료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o-NT, 형광염료 중간체인 DAS, 세척제, 종이
와 직물 광택제 등의 원료로 사용되는 p-NT, 칼라필름 현상액의 원료로 사용되는
m-NT 등이 있다.
남해화학의 MNT공장 건설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MNT의 수입 대체는 물론, 국
내 MNT유도체공장 건설 등 관련 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MNT유도체 중 p-톨
루이딘 및 DAS 등을 향후 직접 생산함으로써 수익을 증대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
다. 공장은 연산 4,500톤(o-NT 2,700톤, p-NT 1,600톤, m-NT 200톤) 규모로 건립
되었으며, 기본설계는 비아찌가, 상세설계는 아시아엔지니어링이 맡았고, 건설은
럭키개발이 담당했다. 공사는 1990년 6월 착공하여 1년 뒤인 1991년 5월 준공에 이
어 7월 시운전을 개시했다. 시운전 과정에서는 냉동기의 2차 냉매에 수분이 침투
돼 냉동 성능이 떨어지고 증발기의 튜브(Tube)가 손상돼 주 성능보장이 약 3개월
지연되는 고충도 있었다. 치밀한 점검과 꼼꼼한 개선 과정을 모두 거친 후 o-NT,
p-NT 제품 생산에 대한 주 성능보장은 1991년 11월, m-NT를 생산하는 부 성능보
장은 1992년 8월 각각 완료했다.
MNT는 남해화학이 국내 최초로 생산하여 관련업체에 공급하는 만큼, 초기에는
제품 수요 부족으로 MNT공장 가동률이 낮았다. 공장 건설과 함께 국내 기존 수
요사인 한국협화, 대한스위스, 태흥산업, 이화산업, 조흥화학 등과 계속 접촉한 결
과 1991년 6월 영국의 공급사로부터 o-NT를 수입하고 있던 한국협화에 수요 전량
을 공급하기로 했다. 이어 타 수요사와도 공급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면서 1991년에
100톤에 불과하던 판매량이 1992년에는 700톤으로 늘어났다. 해외시장 개척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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