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산림조합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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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 _ 산림조합 설립 이전의 역사                                                          제2절 _ 일제강점기의 산림제도와 산림조합




                                                 02. 「삼림법」, 「임적조사」, 「삼림령」의 구성과 내용
                                                 「삼림법(森林法)」(1908년)

                                                 일제는 통감부 시기 이후 조선 임야의 약탈을 꾸준히 추진했다. 1908년 공포
                                              해 삼림소유자가 직접 소유삼림을 신고하도록 한 「삼림법」은 전문 18조와 부칙 4

                                              조 등 총 22조로 구성되었다. 주요 내용은 ①소유자 유형 구분(1조), ②국유삼림산

                                              야 처분규정(2조), ③부분림제도(3조・4조), ④보안림제도(5~9조), ⑤조림보호명
                                              령제도(10조), ⑥병해충방제・개간 금지・분묘설치 금지 등 삼림보호제도(제11~14

                                              조), ⑦처벌조항(제15~17조), ⑧지적신고제도(부칙 제19조) 등이었다.

                                                 이 가운데 핵심 내용은 국유삼림산야의 처분, 부분림제도, 보안림제도 등으
                                              로, 소유권이 확정되어 있어야만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부칙 제19조에 따

                                              라 삼림소유권의 확정을 위한 지적신고(지적계출地籍屆出)가 3년(1908. 1. 24. ~

                                              1911. 1. 23.)에 걸쳐 실시되었다. 이때 신고하지 않은 삼림은 모두 국유로 간주됐
                                              는데, 기간 안에 계출(신고)을 완료한 사유림 면적은 남북한을 합한 전체 삼림 면

                                              적 1,600만 정보의 13.8%에 불과한 약 220만 정보(약 52만 필지)에 그쳤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약 1,400만 정보가 국유로 간주된 셈이다. 또한 신고한 삼림에 대

                                              해서도 1912년의 국유사유구분표준에서 사유를 인정하는 기준에 합당한 것에 대

                                              해서만 사유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국유로 간주했다.



                                                 「임적조사(林籍調査)」(1910년)
                                                 1910년 통감부는 전국에 걸친 임적조사사업을 실시해 삼림법 신고 결과와 달

                                              리 국유림은 830만 정보, 사유림은 755만 정보라는 개략적인 통계를 얻어냈다.

                                              전국의 관・민유림 배치 및 임상개요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조사(1910. 3. 23.
                                              ~ 1910. 10.)를 완료했다. 그 결과 축척 1/20만과 1/50만의 조선임야분포도와 통

                                              계자료가 작성되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임야정리는 관리기관이 없는 국유임야

                                              738만 정보의 정리와 무입목지(無立木地)로 조사된 약 410만 정보의 처리에 초점
                                              이 맞춰지게 되었다.




                                                 「삼림령(森林令)」(1911년)
                                                 1911년 총독부는 「삼림령」을 공포해 무주공산에 대한 한국인의 입회권(入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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