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산림조합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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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조합 60년사 통사
03. 산림조합의 뿌리, 조선의 송계(松契)
조선 시대 ‘송계(松契)’는 마을 또는 친족의 산림을 보호하고 이용하기 위해
결성된 계(契)이다. ‘계(契)’는 신라 시대 초기부터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협
동체를 조직해 공동의 힘으로 농경과 길쌈 등의 작업을 행하면서 비롯됐다. 조선
시대의 향약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인 송계의 조직 목적은 지역에 따라 달랐지만
출발은 마을 주민이 단결해 주변 산림을 함부로 베는 행위를 방지해 황폐를 막는
것으로,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계・두레・품앗이라고 부르는 최초의 민간 협동체라
할 수 있다. 여러 형태의 협동체적 활동 중에서 계는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진 자
들이 상부상조의 정신에 입각해 사회・경제・산업・교육 및 일반생활의 이익을 도
안정사의 금송패(▲앞면 ▼뒷면)
모하기 위해 구성한 일종의 민간 협동조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향약의 등장은 서로 돕고 구제하는 정신을 깊게 해 계를 급속
히 발전시킨 근원이 됐다. 계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조선 후기에는 ‘송계’ 외에
도 공익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동리계(洞里契)’가 있었는데, 이는 마을의 전 주민
으로 조직된 자치단체로 마을이 있는 거의 모든 곳에서 조직됐다.
산림보호를 주목적으로 삼은 송계는 마을 또는 인접 마을을 조직 단위로 삼
1763년에 결성된 송명동 금송계의 계첩
았다. 각 송계는 송금절목(松禁節目)이라는 규약을 자치적으로 운영했으며, 관에 (계첩은 계의 설립목적과 계원들이 지켜야 할
내용을 적은 것)
서도 이러한 민간단체의 조직을 장려해 산림보호에 이용했다. 마을 사람들이 공
동림을 잘 가꾸는 것을 장려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그들의 협력 아래 국가 소유의
금산과 봉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송계는 지방에 따라 금송계(禁松契), 송금계(松禁契), 산림계(山林契), 애림계
(愛林契), 순산계(巡山契) 등으로 불렸는데, 이러한 명칭의 다양성에서도 알 수 있
듯이 여러 지방에서 발달했으며, 송계를 통해 보호한 산림은 훗날까지 비교적 좋
은 임상을 유지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초기에 지역적으로 산림조합을 조직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이처럼 다양한 계들은 시대에 따라 생성, 발전하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쳤다.
일제가 실시한 임적조사사업(1906년)과 임야조사사업(1907년)으로 임야의 대부
분이 국유림으로 편입된 뒤 송계는 많은 지역에서 점차 사라졌으나 산림계로 이
어지다가 오늘날 산림조합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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