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92 -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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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납의 시대에 필요한 자세
변효성 감정평가사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2016년 이세돌 대 알파고의 바둑 경기는 인공지능 알파고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구글의 딥마인드 인공지능이
창출해낸 알파고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귀납에 의존하고 있다. 수많은 바둑 기보를 통해 어떠한 수에 대한 기
대 승률을 통계로 추정해내는 것이 알파고의 프로세스다. 알파고는 매 수순마다 승률이 높은 수를 찾아내며,
기존에 연역적인 사고에 의해 ‘정해진 수순’으로 여겨졌던 부분을 산산조각 내 버렸다. 알파고가 필자에게 준
충격은 쉽게 잊을 수 없는 것이었고, 몇몇 연역적 이론에 기대어 감정평가업무를 수행하는 감정평가업계의 관
행이 오래 갈 수 없음을 직감했다.
얼마 전 필자는 회사에서 심사업무를 보던 중 면적이 큰 필지를 분할하면 단위면적당 가격이 상승한다는 논제
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논리는 이른바 ‘광평수 감가이론’으로 감정평가사들이 자격시험을 준비하는 중에
누구나 공부하는 이론이다. 하지만 해당 이론은 필자가 현업에서 일하면서 가장 현실과 괴리된 이론이라고 여
기고 있다. 해당 이론을 대명제로 사용하여 현실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웃돈을 주고 다량의 필지를 매집하여
합필하는 시행사의 행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과거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광평수 감가이론은 대규모 부동산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수요자가 제한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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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적인 사고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발달하는 여러 가지 부동산 금융기법에 따라 수요자의 벽이 허
물어짐에 따라 광평수 감가이론이 성립할 가능성은 매우 낮게 되었다.
필자는 감정평가서에 “해당 토지는 광평수 토지로서 규모 측면에서 표준지에 비해 불리함.”이라고 무심코 적
은 내용을 보면서 우리가 철 지난 연역의 논리를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해 고찰해 볼 필요를 느꼈다.
인간은 누구나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려고 한다. 여기서 효율적이란 적은 시간과 비용을 투입한다는 전제가 있
으며, 필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이 ‘효율적’ 판단을 위해 심리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무시(Rational Ignorance)를
반복하고 있다. 적당히 이해되는 연역적인 이론에 기대어 직면한 현상들을 끼워 맞추면, 판단을 빠르게 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난받을 여지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합리적 무시를 반복하다 보면
새로이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비전문가적인 결론을 내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새로운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가설을 세우기 위해서는 당연히 다수의 데이터를 코딩해서 저장해 놓을 필요가
있다. 여기서 다수의 데이터란 감정평가 선례와 같이 수차례의 가공을 거친 데이터가 아니라 가공을 거치지 않
은 raw data를 의미한다. 다수의 데이터가 없다면 아무리 좋은 AI 프로그램이라고 할지라도 최적의 결과를 도
출해 내지 못한다. 과거 이세돌과 격돌했던 알파고는 수십만 회의 바둑 기보를 통해 점점 더 강해졌고, 그 이후
세계랭킹 1위였던 중국의 커제에게는 단 한 판의 패배 없이 완승했다.
지능이 AI에 비교해 턱없이 부족한 것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AI의 시대에서 우리가 책임감 있게 해야 하는
사명이 바로 데이터를 소중히 수집하는 것이라는 점을 통감하고 있다. 특히 1회 혹은 2회 가공된 감정평가전례
보다는 거래사례와 임대사례를 충실히 수집하여야 앞으로의 시대를 헤쳐나갈 힘을 갖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
다. 우리 법인이 창립 50주년에서 100주년으로 순항하기 위한 초석은 바로 데이터의 수집과 관리일 것이다.
50 Years History of JE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