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9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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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 농촌진흥사업
밭작물의 재배
① 보리
농촌진흥청의 식량 작물 기술 보급은 1970년대까지 통일벼 보급에 집중되었다.
이로 인해 벼농사가 가파르게 성장했으나, 타 작물분야는 기술보급사업이 상대
적으로 부진했다.
식량 작물 중 보리는 벼 대체작물로서 1960년대 정부의 증산시책에 힘입어 논
1976.
보리밭 가뭄(한해) 대책으로 물을 주고 있는 답리작(벼+보리)이 증가했다. 농촌진흥청의 지도로 논답리작이 활성화되면서
모습 1974년 이후에는 밭보리보다 논보리 재배면적이 많아졌다. 1976년에는 최악의
가뭄과 혹한으로 동해에 취약한 보리가 큰 피해를 입었다. 이를 계기로 농촌진
흥청이 재배한계선(1월 최저 평균기온 –4℃선)을 재설정하는 등 재배기술을 재
정립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1980년대는 쌀 자급이 가능해져 보리 수요가 감소했다. 1984년부터 보리쌀의 식
미 개선을 위해 찰성을 도입한 찰보리가 주력 육종 품목으로 보급되면서 보리농
사의 전기를 마련했다. 1990년대는 전반적으로 보리 육종 보급의 쇠퇴기가 지속
된 가운데, 1994년 농촌진흥청이 보리 지역 명품화사업을 도입해 찰쌀보리를 소
포장으로 가공·판매하는 사업을 전개하며 보리재배 확산의 활로를 열었다.
② 밀
밀은 1960년대에 소비량이 증가하면서 1969년부터 3년간 신품종 보급을 위한
집중 시범사업을 전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밀은 보리에 비해 숙기가 늦어 1970
년대 들어 다른 맥류에 비해 재배면적이 축소되었다.
1970년대 말 쌀 자급율 증가와 혹한으로 인해 보리재배가 위축되면서 농촌진흥
청이 밀재배로 시선을 돌려 기술지도와 함께 시범사업을 다시 강화했다. 정부도
1979년 밀 수매정책을 펼치는 등 지원을 통해 밀 재배면적이 증가했다. 이후 정
부가 밀 수입 자유화 선언과 함께 1984년 밀 수매를 중단하자 1980년대 말에는
밀재배가 거의 중단되었다.
1980년대 말부터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전개되면서 1996년까지 계약재배가 이루
어지는 등 재배면적이 늘었고, 농촌진흥청도 파종기술과 수확기술의 보급을 선
도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에는 가격경쟁력에서 수입밀에 밀리며 우리밀 소비
가 둔화되고 농가재배도 명맥만 유지되었다.
③ 콩
콩은 1960년대까지 비료 없이도 육성되는 작물로 알려져 무비재배농가가 다수
를 차지했으며, 콩의 용도 또한 밭토양의 비옥도를 높이는 작목 정도로 재배되
는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까지도 콩은 맥류나 목화 등의 간작으로 주로 재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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