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5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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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 농촌진흥사업
술의 보급은 대 성공이었다.
통일계 품종이 본격 보급되면서 쌀 생산량이 획기적으로 증가해 1974년에는
3,000만 석을 돌파했고, 1977년에는 주곡의 자급이라는 온 국민의 여망을 달성
하는 녹색혁명을 성취해내며 역사상 유례없이 해외에 쌀을 수출까지 하는 쾌거
를 거두었다. 또한 이 해 통일벼는 단위면적당(10a) 생산량(494kg)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978. 녹색혁명 성취의 탑
벼 기계이앙 도입으로 기계화 기반 구축(1981~1990년)
03 증산에서 품질로
통일벼를 통한 쌀자급 목표 달성과 함께 벼농사가 풍년을 이어가면서
식량증산을 외치던 분위기는 가라앉고, 맛있는 쌀에 대한 국민 요구가 새롭게
높아졌다. 이를 반영해 벼농사도 맛있는 쌀, 양질의 쌀을 생산하는 데 보다 역점
이 두어졌다.
1980년대에 농촌진흥청은 벼 통일계 품종 대신 일반계의 육성 보급에 보다 주
력했고, 재배기술도 증산보다는 양질 품종의 기술지도로 전환되었다. 농촌진흥
청이 신품종 우량종자 대체재배에 집중한 결과, 일반계 양질 다수확 품종의 재
배면적이 확대되었다. 1980년대 말에는 육성보급 품종 중에서 일반계가 다수를
차지하면서 통일계와 일반계에 대한 농가 선호도가 역전되었다. 일반계 주요 품
종으로는 ‘오대’, ‘화성’, ‘화청’, ‘화진벼’ 등 밥맛이 좋은 양질의 품종들이 보급되
면서 농업인들의 호응이 높았다. 특히 ‘동진벼’의 경우 전 재배면적의 29%까지
재배되며 큰 인기를 모았다.
육묘기술 선도한 기계이앙
1960년대까지도 우리 농업은 전근대적인 농법이 지배했다. 농업인들이 허리를
숙여 손으로 논에 모를 심는 모습은 아직도 우리 농촌의 상징적인 풍경처럼 남
아 있기도 하다.
1970년대 들어 이앙기가 개발되며 손이앙 재배기술에 혁신을 가져왔다. 1971년
에는 수동식 이양기가 처음으로 보급되었지만 실용화되지는 못했고, 1975년 동
력이앙기가 농사의 편의성을 크게 높이며 기계이앙이 급속히 파급되었다. 1976
년부터 기계이앙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1977년에는 농촌진흥청이 기계
이앙 시범단지(26개소 218ha)를 설치하고 모내기용 기계이앙 재배기술을 보급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산업화에 따라 이농, 이촌이 증가해 농촌의 노동력이 크게 줄었
1970년대. 기계이앙 재배 고, 이를 대체하려 농업기계화가 확대되었는데, 농촌진흥청이 모내기 생력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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