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1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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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 농촌진흥사업




                                            지도자연합회를 결성하며 단위별 조직화를 이루었고, 1970년 전국적 조직인

                                            사단법인 전국농촌자원지도자중앙회(이하 농촌지도자회)를 창립했다.
                                            생활개선회는 1958년 농사원이 농촌생활개선사업을 추진하자, 농촌여성들이

                                            자발적 학습단체인 가정구락부를 조직하고 사업을 지원하면서 시작되었고,
                                            1959년에는 생활개선구락부로 명칭을 변경했다. 1962년 농촌진흥청의 발족과
                                            함께 농촌 지역 생활개선활동을 수행하면서 농촌진흥청 소속 비영리법인으로

                                            자리매김했다. 생활개선회는 농촌여성을 중심으로 농가생활을 좀 더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현안 과제들을 실천했으며, 초창기에는 개량메주
            1960년대.  4-H 회원 마을 순회지도
                                            만들기, 아궁이 개량, 찬장 만들기, 밥상덮개 만들기 등이 농가에 보급되었다.
                                            1970년에는 읍·면 연합회로 생활개선구락부 연합회가 조직되면서 읍·면과 마을
                                            까지 활동이 확산되었다.

                                            4-H회는 해방 직후인 1947년 농촌부흥을 목표로 우리나라에 도입된 조직단체
                                            이다. 1889년 미국에서 생겨난 4-H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시작된 것이다. ‘지(智)·
                                            덕(德)·노(勞)·체(體)’를 실천이념으로 농촌 개발과 지역사회 발전에 공헌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구성원은 농촌의 청소년들로 이루어졌다. 1952년 정부가
                                            4-H운동을 국가시책사업으로 채택하면서 1953년 한국4-H구락부중앙위원회가
                                            결성되고 정책수립 기능과 체제를 갖추었다. 1954년부터는 4-H중앙경진대회도
            1972.  4-H 경진대회 시상식
                                            개최했다. 1962년 농촌진흥청이 발족한 이후에는 4-H구락부가 농사기술을 보급
                                            하고 농업인 학습조직을 육성하면서 농촌생활 계몽운동을 활기 있게 펼쳤다.





                                                   농업인학습단체의 새마을운동 선도(1971~1980년)


                                          02 녹색혁명과 농촌 근대화의 첨병
                                                   1970년대 농촌지도자회는 식량자급 달성의 대 과업 수행을 위한 녹색

                                            혁명의 최일선에서 선도적 역할을 했다. 특히 다수확 신품종(‘통일벼’ 등)의 보급이
                                            국가 시책사업으로 추진되는 과정에서 농촌지도자들이 각종 시범사업을 주도함
                                            으로써 농가가 새 기술을 과감히 도입하는 데 앞장섰다. 농촌지도자들의 헌신적인

                                            노고로 1977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주곡의 자급자족을 이룰 수 있었다.
                                            생활개선회는 1970년 생활개선구락부연합회가 조직되면서 부원 수가 매년 늘어
                                            났고 활동도 다양해졌다. 특히 1970년대는 농촌 개발에 정부 투자가 중점적

                                            으로 이루어져 새 농촌 건설을 목표로 농촌에 새마을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마을 어귀에는 새마을 깃발이 내걸리고 자조, 자립, 협동의 정신을 기조로 새마을
                                            운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생활개선회가 농촌 근대화 촉진을 위한 새마을사업에

                                            함께 참여했다. 지붕 개량과 마을길 넓히기 등 각종 사업을 통해 1970년대 말이
                                            되면 낡은 초가지붕은 거의 볼 수 없게 되고 문화주택이 등장하는 등 농촌마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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