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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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신 60년, 국민행복 100년
훼 주산단지로 지도요원을 파견해 기술지도를 하고 시범사업을 통해 화훼재배
기술 보급에 앞장섰다. 이 시기 농가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는 기대만큼
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화훼산업의 성장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
은 희망적이었다.
유지작물에 눈을 돌리다
1980년대 농촌지도사업은 증산 중심의 지도사업에서 나아가 원예, 과수, 특용
작물 등 소득작물에 보다 역점을 두었다. 쌀, 보리 등의 식량작물은 주곡의 안정
공급을 위해서 중요하지만, 농업 소득 측면에서는 소득탄력성이 상대적으로 낮
았다.
특용작물 중에서도 섬유작물은 1970년대까지 시범사업이 종료되었고, 1980년
참깨 비닐멀칭 시험재배
대 들어서면서 유지작물 위주의 시책이 전개되었다. 유지작물의 재배를 독려하
기 위해 참깨를 중심으로 땅콩, 유채의 신 품종 시범사업이 실시되었다. 참깨는
1970년대 후반 식생활 패턴이 달라지며 라면과 각종 제과 등으로 수요가 급증했
고 정부도 증산시책을 강화했다.
1978년에는 농촌진흥청이 ‘참깨 비닐멀칭재배 시범사업’을 시작하면서 참깨 재
배기술도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농촌지도사들이 각 지역에서 멀칭 효과에 대한
지도에 열성을 다하는 가운데 비닐피복재배는 1981년 참깨 재배면적의 37%에
달했고, 1987년에는 92%의 피복율을 보임으로써 백색혁명 달성의 한 부분을 차
지하게 되었다. 비닐피복 재배기술 보급으로 우리나라는 1988년 참깨 자급률이
100%에 달했다.
이후 1990년대에는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과 농산물 수입개방에 따른 가격
경쟁력 저하로 참깨 재배면적이 점차 줄었고, 기계화 농사 등 생산비 절감을 통
한 경쟁력 제고가 과제가 되었다.
땅콩은 유지작물 자급시책에 따라 1966년부터 품종 육성과 재배기술 보급이 본
격화되었다. 1970년대에는 비닐피복 재배방법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1987년이
되면서 땅콩 자급율이 113.8%를 기록했다. 그러나 1995년 UR 협상 타결 이후
저가 외국 농산물의 국내 유입으로 국내 땅콩 생산은 재배면적이 감소했다.
유채는 타 작물에 비해 낮은 소득 수준으로 인해 재배농가가 매년 줄어들어 제
주에서 집중재배되었으나,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경관조성을 목적으로 주로 재배
되었다. 기술 보급에서도 돌이 많은 제주 지역 여건에서는 기계의 마모가 심해
유채의 기계화 재배는 쉽지 않은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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