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3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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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 농촌진흥사업
농촌진흥청이 비닐하우스 채소 생산사업을 집중지도하면서 1970년대 후반에
이르면 시설재배면적이 폭발적으로 확대되었다.
1980년대는 인구 도시집중의 심화로 농촌에 노동력이 부족해지면서 농가 재배
면적의 증가세가 멈추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생산기술의 생력화에 박차가 가
해졌다. 1980년 농촌진흥청에 의해 비닐하우스 시설 표준설계서가 설정되었으
며, 부대시설로 환기장치, 커튼장치, 관수시설 등이 도입되었다. 이 표준설계도
비닐하우스 재배단지
를 기반으로 많은 농가에 시설이 보급되었다. 이에 더해 농촌진흥청이 1980년
대 초부터 표준화 하우스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비닐하우스를 활용한 시설원
예가 성장발전기를 맞이했다. 시설재배 기술의 개발과 보급은 자급영농에서 상
업농으로의 급속한 변화를 촉진했다. 또한 신선 농산물의 연중 생산을 가능하게
해 다수확 작부체계가 정착되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화훼 기술지도의 시작
화훼산업은 꽃이 사치품으로 취급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일부 농가에 의해
소소한 발전을 보였을 뿐 타 분야에 크게 뒤졌다. 1970년대 들어 도시화의 진전
과 국민소득 향상에 따라 화훼 소비가 늘어나 전업농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정부는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화훼산업의 육
성에 나섰다. 1983년부터 생산단지의 조성을 통해 전문적인 화훼 생산을 견인
하기로 했다. 농촌진흥청은 1983년부터 무궁화 신품종 보급을 위한 시범사업
으로 40개소에 전시포를 설치하고 나라꽃 보급에 앞장섰다. 이를 시작으로 매
년 전시포를 설치하면서 연시회, 강습회를 통해 지역 여건에 알맞은 화종과 작
기 선택 등 새 기술을 인근 농가에 보급함으로써 화훼발전에 선도적 역할을 담
당했다.
1980년대 양대 대회를 치르는 동안 도시공간의 미화를 위한 가로화단 조성사업
등 에 힘입어 화훼산업이 발전되었다. 대도시의 각 가정에서도 장미, 국화, 난,
선인장 등의 수요가 늘어나 대체작물로서 화훼의 새로운 발견과 함께 화훼산업
이 유망사업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 시기 우리나라의 꽃 소비 수준은 초보 단계로서 졸업, 입학, 개업 등
행사 위주의 꽃 소비 구조에 머물러 꽃의 질보다는 양적인 성장에 그쳤다. 꽃 소
비 저변 확대를 위해 농촌지도자대회(1990년 11월) 등의 기회를 이용해 분재 전
시회를 개최하거나, 직장 여직원 모임에서 국화를 직접 기르게 해 시상도 하고
꽃꽂이 강습회도 갖는 등 꽃의 생활화와 소비 촉진 운동에 앞장섰다. 각 지역 농
업기술센터에서도 도시민을 대상으로 꽃꽂이 강습회와 화분 가꾸기 교육 등을
실시했다.
자동화하우스 국화재배 꽃의 품질과 재배기술이 아직 선진국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농촌진흥청이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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