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3 - 남해화학 50년사
P. 63
통사편
방위산업의 밑거름이 되다
화약의 원료인 초안의 생산을 통해 남해화학은 방위산업에 필수적인 자재 공급을
담당했다. 남해화학에서 생산되는 초안은 시중 유통을 엄격히 규제받는 가운데 방
위산업체인 한국화약을 수요처로 화약 원료를 공급하여 국가 방위능력 증진에 힘
을 보탰다. 초안은 군용 화약 외에도 다이너마이트, 고폭약, 마취제, 살충제 등의 원
료로 쓰였다. 특히 1970년대 중반부터 건설경기가 호황을 누리면서 건설용 폭약의
수가 급증했다.
남해화학의 초안공장 준공 이전에는 국내에 초안을 생산 판매하는 업체가 없었다.
당시 국내 유일한 초안 수요처이던 한국화약은 수요 전량을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978년 남해화학이 연간 1만 5,000톤 생산 규모의 입상초안공장을 완공하
고 초안을 생산하기 시작함에 따라 그해 8월 남해화학과 한국화약은 향후 10년간
의 초안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산업용 폭약의 원료인 초안을 생산하는 남
해화학의 입상초안공장은 수요 부족으로 갈수록 가동률이 떨어지며 수시로 단속
가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입상초안공장이 저조한 가동 실적을 보인 것
은, 산업용 폭약의 제조 원료로 대부분 입상초안 대신 분상초안이 요구되었기 때
문이다.
이에 따라 하루 40톤, 연산 1만 2,000톤 규모의 분상초안공장이 건설되었으며,
1979년 10월 시운전에 들어가 11월에 성능보장이 완료됐다. 남해화학이 분상초안
공장을 준공하여 한국화약에서 생산하고 있는 AN-FO 폭약 및 다이너마이트 제조
의 주요 원자재를 전량 대체시킴으로써 국내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원가
절약과 생산성 향상을 시현했다. 또한 생산 잉여량을 동남아 각지에 수출할 수 있
었다.
초안의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했다. 첫해 판매 성과는 4,500톤에 불과했으나 분상
초안이 판매되기 시작한 1980년 국내 수요가 증가해 1만 5,700톤에 달했다. 매년
수출 물량도 크게 늘어났다. 수출 첫해 1981년 2,600톤을 기록한 뒤 1988년에는 2
만 6,300톤으로 신장됐고, 1990년대에는 5만 톤을 넘어섰다.
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