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남해화학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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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산공장(1기)
                                                인산질비료(복합비료)는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했다. 인산은 복비의 인산질 성
                                                분을 공급하기 위해 생산되는 중간제품이다. 3, 4비의 건설과 함께 자급자족이 가

                                                능했으나, 1974년부터 내수 증가로 인해 또 다시 수입 재개가 예상되는 등, 인산질
                                                비료의 부족은 계속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였다.

                                                인산질비료의 장기적인 국내 수급과 해외 수출 목표 물량에 부합되도록 하루 660
            인산공장 전경
                                                톤, 연산 21만 톤 규모 인산공장 1기를 건설했다. 미국의 데이비 파워가스가 설계
                                                와 시공을 맡은 인산공장은 1977년 4월 가동을 시작해, 같은 해 5월 27.5% 저농도
                                                인산을 처음으로 생산했으며 6월 19일부터 21일 사이에 성능보장을 완료했다. 인
                                                산공장은 1988년 공정개선사업을 실시하여 1990년대에는 하루 1,100톤, 연산 34만

                                                톤이 생산됐고, 1990년대 초반 최대 생산량을 달성했다.
                                                인산공장은 여러 공정이 있으나 여수공장 규모가 세계 최대인 만큼, 인산공장 가

                                                동 후 부생될 연간 약 100만 톤에 달하는 석고의 처리문제와 연계하여 고민해야 했
                                                다. 당시로서는 부생(副生)석고 처리가 난망 시 되었지만 향후 늘어날 시멘트 생산

                                                과 내열제 및 프라스타 원료 사정을 고려, 반수(半水)석고 방식의 공정을 선택할 것
                                                인가 아니면 생산성이 더 좋은 이수(二水)석고 방식의 공정을 선택할 것인가를 두

                                                고 시간을 끌게 됐다. 결과적으로는 이수석고 방식의 Central Prayon 공정을 선택
                                                하게 됐다. 한편 인산공장은 그 밖에도 불화규산을 제조하여 판매했다.



                                                희질산공장(1기) & 농질산공장(1기)
                                                남해화학은 질산공장의 건설을 통해 첨단 정밀화학 기업으로 도약하는 초석을 다

                                                졌다. 1974년 당시 국내에는 하루 10톤 규모의 질산 생산시설이 한국종합화학 나
                                                주공장에 있었다. 그러나 운휴 중이어서 우리나라는 국내 질산 수요 전량을 사실
                                                상 고가의 수입제품에 의존했다. 이런 가운데 금속 및 섬유 계통 산업의 발전으로

                                                국내 질산 수요가 급증하여, 여수공장이 가동될 무렵인 1977년 수요는 2만 7,000
                                                톤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남해화학은 이를 감안하여 연산 6만 톤 규모의 희질산공장 1기를 건설했다. 미국
                                                의 케미코에 의해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진 희질산공장은 1977년 5월 4일 시운전을

                                                시작해 6월 19일 성능보장을 완료하고 정상 조업에 들어갔다. 농질산공장도 미국
                                                의 케미코가 설계와 시공을 맡아 연산 3만 3,000톤 생산 규모로 건설됐으며, 1977

                                                년 5월 16일 시운전을 개시하여 6월 12일 성능보장을 완료했다. 남해화학이 연산 6
                                                만 톤의 순도 60% 희질산과 연산 3만 3,000톤의 순도 98% 농질산을 생산할 수 있
                                                는 대단위 공장을 가동하면서, 그동안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국내 질산 수요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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