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7 - 남해화학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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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편
복비공장 제1공장은 1977년 6월 23일 최초로 원료를 투입하여 25일 정상 가동에
들어갔으며, 제2공장은 1977년 6월 24일 원료 투입과 함께 정상 가동에 들어가 시
제품을 생산했다. 미국의 데이비 파워가스가 설계와 시공을 맡아 수행한 복비공
장은 두 개의 공장에서 하루 2,000톤, 연간 70만 톤 규모의 비료를 생산했다. 이후
1989년에는 생산능력 증대사업을 완료하여 생산 규모가 연산 100만 톤으로 증대
됐다. 복비공장이 준공되면서 우리나라는 비료를 자급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향
후 상당기간 비료 공급에 여유를 갖게 됐다.
암모니아공장(2기)
여수공장은 암모니아 생산 능력에서 세계 최대 규모로 탄생했다. 암모니아는 국내
화학제품 관련 산업의 성장과 함께 지속적인 수요 증가를 보였으며, 3비와 6비의
확장, 남해화학 비료공장의 건설 등으로 1979년에 이르면 비료 제조용 암모니아
수요만도 1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더해 남해화학의 질산 및 초안공
장 건설을 비롯해 석유화학 산업의 확장 등에 따라 비료 외 공업용 암모니아 수요
도 증가가 예상됐다.
국내 암모니아 생산은 1976년까지는 기존 시설로도 내수 충족이 가능할 것으로 보
였고, 1977년부터 여수공장이 가동되면 내수 충족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됐
다. 이러한 수급 전망에 따라 남해화학은 연산 30만 톤 규모 암모니아공장 2기를
건설하기로 최적 생산시설 규모를 산정했다.
1공장은 1977년 3월 9일 시동을 걸어 5월 10일 최초로 암모니아를 생산하였고, 21
일부터 24일 사이 성능보장을 마쳤다. 2공장은 1977년 8월 14일 시동을 걸어 31일
첫 제품을 생산했으며, 9월 3일부터 6일 사이 성능보장을 완료했다.
공장 건설에서 기업의 성패는 여러 요인 중 생산공정의 선택에서 기인되는 경우
가 적지 않았다. 따라서 남해화학의 암모니아 공정도 신중하게 선택이 이루어졌
다. 당시는 석유파동이 사상 유례없이 불어닥치던 때였으므로 향후 나프타 리포밍
(Reforming) 방식으로 할 것인가, 또는 벙커시유 부분산화방식을 택할 것인가 하
는 선택을 두고 다각도로 조사연구를 거듭했다. 그 결과 암모니아공장의 공정은 2
기 모두 미국의 켈로그 공정으로 나프타 리포밍 방식을 채택했다(1991년 그중 1기
를 LPG 리포밍 방식으로 전환).
한편 암모니아 1공장은 암모니아를 첫 생산한 다음 날인 1977년 5월 11일부터 요소
공장에 탄산가스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탄산가스는 요소의 주원료로 사용되며 용
접, 드라이아이스 등 공업용으로 쓰였다. 암모니아 1, 2공장은 각각 연간 30만 톤의
암모니아공장 전경 암모니아 외에 43만 톤의 탄산가스를 생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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