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4 - 남해화학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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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화학 50년사
주요 제품은 요소, 복합비료, 염화가리, 암모니아, 황산, 인산 등으로 축소되었다.
구성원들이 아직 급격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2002년 9
월 남해화학과 휴켐스로 기업 분할이 눈앞으로 닥쳐오면서, 남해화학 노조 등은
2002년 7월 회사 분할 중지를 주장하는 집회를 전남 여수시청 앞에서 가졌고 8월
에는 전면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은 임금협상의 결렬이란 직접적인 이유 외에 비료
사업과 정밀화학사업으로 인력과 조직이 양분되는 데 따른 고용 불안감에서 비롯
된 것이었다. 회사 분할 중지와 요소공장 재가동을 촉구하며 전면 파업까지 돌입
했으나 분할은 감행돼 2002년 9월에는 정밀화학 부문이 분사하여 휴켐스가 출범
했고, 이로써 남해화학의 사업구조조정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기업 분할은 우려했던 대로 남해화학에 즉시 경영의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고수
익성사업인 정밀화학 분야가 분리해 나가자 2002년 남해화학은 2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서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거북선표 비료로 해외시장에까지 이름
을 알리며 대한민국의 비료산업을 이끌던 남해화학이 이대로 퇴락의 길을 가게 될
지, 새로운 도약의 길을 가게 될지 업계의 귀추가 주목되었다.
창사 이래 정밀화학사업 부문이 분사해 나간 후 비료사업 부문만으로 사업을 시작하는 첫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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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위기 인 2003년, 남해화학은 위기감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고 출근하는 직원들의 표
정은 하나같이 어두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냉정을 찾아야 할 때. 임직원 모두가
새로운 각오로 변화와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리고는 곧 거센 폭풍이 닥쳐 왔다. 공
익성이 강조되는 비료사업만으로 살아남기 위해 조직개편과 인원 감축이 단행되
었다. 예전과 같은 우량기업의 위상을 하루빨리 회복할 수 있도록 남해화학은 경
영 합리화에 전력을 기울였다. 질소질공장의 중단에 따른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조
직 슬림화와 함께 2002년 130여 명의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였고, 2003년에도 강
도 높은 구조조정을 강행했다. 함께 땀 흘리며 고생하던 동료들이 회사를 떠나는
모습을 우울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정밀화학 분야를 포함해 한때 2,000여 명에 달
하던 남해화학의 직원 수는 500여 명 수준으로 축소되었다.
2005년 3월에는 대주주인 농협(농협중앙회)이 ‘자회사 경영혁신 선포식’을 갖고
남해화학 등 자회사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했다. 이에 대응해 남
해화학도 자구책을 강구하게 되었다. 이에 더해 2005년에는 7월부터 정부가 지원
해오던 비료보조금을 폐지함에 따라 농가의 비료 수요 감소가 예상되는 등 비료업
계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비료공장 가동률이 점점 저하되는 상황에서 남해화학은
또 다시 조직을 슬림화하는 한편 명예퇴직을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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