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산림조합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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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조합 60년사 통사
1971년에 《산림》으로 제호를 변경하고 정부의 산림시책과 각종 임업정보를
전파해 임업기술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2002년 11월부터 창간 이후 누적된 《산림》의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해 누구
나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다. 2012년에는 웹진 형태로 전면 재구축해 책자 형태
그대로 편리하게 보고 검색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했으며, 2022년 5월 기준
676호/월간 3만 1,250부를 발간하며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65.04.01. 《산림보호》(현 《산림》) 창간
임업지도원의 탄생
1962년 「농촌진흥법」이 공포됨에 따라 산림계를 통해 명목만 유지해 오던 임
업지도사업이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됐다. 「농촌진흥법」은 농사연구지도체계를
일원화하고 시험사업과 지도사업을 확대 강화했다. 아울러 시험연구지도기관을
일반행정기관과 기능적으로 분리했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 산하에 시・군 농촌
지도소를 설치하고, 과거 단체별로 소속했던 농사교도원, 생활개선교도원, 지역
사회개발요원, 잠업지도원, 축산지도원 등과 함께 산림조합의 임업지도원을 통합
해 농촌지도체계가 일원화됐다.
이 시기에 산림조합의 임업지도원 249명이 농촌지도소에 흡수되어 정규직원
화됨으로써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임업지도원이 탄생하게 됐다. 시・군 농촌
지도소에 배속된 임업지도사는 주로 포플러 용재림, 연료림, 특용수림의 3가지 시
범림을 설치해 경영지도를 담당했다.
그러나 1967년 산림청이 개청함에 따라 농촌진흥청 산하에 있던 임업시험연
구사업과 임업지도사업이 산림청 산하로 이관됐다. 산림청에는 시험연구기관만
설치됐을 뿐 임업지도 담당부서가 없었기 때문에 임업지도사가 농촌지도서에서
다른 분야의 업무를 맡거나 전직했다. 이에 따라 정규 직원화됐던 임업지도사는
없어지게 됐다.
또한, 1967년에는 지도사업의 정확한 성과를 높이기 위해 각 시・도 및 대한
산련에 임업기술활동지침을 시달하여 지도체계의 확립과 지도방향을 제시했다.
1968년에는 전국의 일선 임업기술담당자 180명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임업기
술지도 활동원칙이라는 《지도교본》을 배부하여 실질적인 지도활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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