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5 -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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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40인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제일감정평가법인 30년사』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합동사무소 당시 제일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실적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업계의 선두였                                              통사 | 최고를 향한 제일의 50년 여정
                    다. 그러나 법인 출범을 앞둔 시점에서 안이한 자만심에 빠져 인적구성에 시행착오를 초

                    래하고 말았다. 타 법인은 1990년 말부터 1991년 초까지 지방에서 활동하던 감정평가사
                    를 영입하며 인재 확보에 공을 들였으나, 제일은 오히려 법인 참여를 희망하는 지방 감
                    정평가사들의 구애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좀 더 좋은 지방 합동사무소가 제휴 요청을
                    할 때까지 팔짱만 끼고 있었다. 인적 구성 요건을 채우는 일을 낙관만 하고 있었다.




                                              자만에 대한 결과는 참담했다. 막상 5월이 지난 뒤에도 법인 설립에 필

                                              요한 인원을 확보하지 못해 비상이 걸렸다. 6월 들어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러다가 구성 요건조차 채우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
                                              었다. 실무급 인재들은 다들 소속을 정한 상황에서 40인의 감정평가사

                                              를 끌어모으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은퇴하였거나 소속을 찾지
                                              못한 원로감정평가사들을 접촉해 가까스로 40인을 채웠다. 당시 상황
                                              을 잘 알고 있는 한 원로 감정평가사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045
                    제일이라는 이름이 출범 20년 만에 기득권화되고 자만심에 빠졌다. 업계의 구도가 재편
                    되고 있는 역동적인 상황에서 너무도 안일했다. 법인화로 인해 업계의 지각변동이 일어

                    날 것을 예측한 다른 법인들은 한발 앞서 인재를 확보하고, 앞서서 발기인대회까지 마친
                    상황에서도 뒷짐만 지고 있었다. 합류를 타진하는 지방 합동사무소들이 문을 두드려도
                    외면하고, 감나무 밑에서 감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격이었다. 그로 인해 제일은 일순간에

                    업계에서 하위권으로 밀려났다.



                                              1991년 6월 18일 제일은 가까스로 감정평가사 40인을 확보하고, 이튿

                                              날 방배동 제일합동사무소 사무실에서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법인 설
                                              립을 채 2주도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안도하기에는 일렀다.
                                              발기인대회 직후 원로평가사가 대부분인 인적 구성에 회의를 느낀 평

                                              가사 6명이 이탈을 선언하면서, 결원을 채우느라 마지막까지 동분서
                                              주해야 했다.
                                              건설부에 서류를 제출하기 직전까지 제일은 인원 확보에 열을 올려 겨                            2장 | 감정평가법인의 출범과 업무영역의 확장

                                              우 최종 요건을 완성했다. 그리고 1991년 7월 1일 설립인가를 확정받았
                                              다. 감정평가법인 출범 전인 1989년까지만 해도 업계의 선두주자였던
                                              제일의 초라한 출범이었다. 다행히 같은 날 제일은 유일한 지방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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