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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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후 1978년 8월, 1986년 1월에 이기주와 한상의가 뒤를 이어 대표
로 취임했다.
제일을 창업한 세 토지평가사는 모두 건설부 공무원 출신이라는 점이 통사 | 최고를 향한 제일의 50년 여정
가장 큰 특색이었다. 대표를 맡은 김헌달 평가사는 국토건설청 경리계
에서 보상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보상기준과 절차를 만들었으며, 이
기주 평가사는 이리국토건설국 경리계, 한상의 평가사는 건설부 이수
과에서 각각 보상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이들은 토지평가사 합격 이
후 안정된 직장인 건설부에서 퇴직하고 합동사무소를 차리는데 의기
투합했다.
한편 제일토지평가사합동사무소의 뒤를 이어 중앙, 서울토지평가사
합동사무소가 개설되었으며, 대한, 수도 토지평가사사무소가 합류했
다. 한국감정원을 포함하면 초창기 토지평가사무소는 총 6곳이었다.
03 기준지가 조사업무의 시작
최초의 기준지가 고시 지역 지정
기준지가 고시는 부동산 가격의 안정과 국토개발의 편리성 확보를 위
해 시작되었다. 기준지가 고시로 적정한 지가를 유지하고 공공시설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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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의 매수나 토지수용 시 보상액의 적정한 산정을 통해 공공사업을 원
활하게 진행하려는 목적을 띄고 있었다.
「국토이용관리법」 제정과 이를 근거로 한 토지평가사 제도 시행은 1973
년부터 시작되는 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이끌 중요한
단초였다. 많은 난제로 국토개발계획이 진전되지 못하는 가운데 개발효
과가 큰 특정지역 중심으로 개발계획을 전환한 정부는 1973년 4월 3일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국토이용관리법」에 의한 기준지가 고시 대상 지
역을 지정했다. 대상은 구미, 여수, 창원, 낙동강 하류, 온산, 군산 등 6개
공업단지와 제주도 관광종합개발지역 등 총 1,870㎢ 지역이었다.
정부가 토지평가사 배출 체제가 갖추어지기도 전에 기준지가 고시대
상 지역을 지정한 것은 그만큼 새롭게 수립한 국토이용계획을 조속히
실행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또한 기준지가 고시 지역 지정을 서
1973.07.20.
기준지가 고시에 관한 기사 두른 것은 공업단지의 지정이나 공공시설의 설치 등으로 일어나는 부
동산 투기 억제와 지가의 폭등을 예방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이에 따라 건설부는 기준지가 대상지역을 고시한 이후 구미, 여수, 창
원, 낙동강 하류, 온산, 군산, 제주도에 토지평가사 42명을 파견했다. 1장 | 감정평가 업계의 선도적 역할 수행
한국감정원 소속의 토지평가사와 제일과 중앙 토지평가사합동사무소
의 토지평가사가 첫 업무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