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78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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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신 60년, 국민행복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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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유전자원 연구
유전자원 수집, 보존과 보존·연구의 기반 확보(1962~1990년)
01 1906년 우리나라 농사시험연구기관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권업모범
장’이 설치되면서 벼, 콩, 보리 등의 육종사업과 더불어 벼를 비롯한 두
류, 맥류 등 재래종의 수집도 본격화되었으며,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을 계기
로 수도품종 등 중요한 품종들의 보존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1962년 ‘농촌진흥청’ 발족과 함께 작물육종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유전자원
1988.08.26.
종자은행(유전자원저장실) 준공 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고, 작물의 종류 및 품종의 수도 확대되었다. 1970년 농
촌진흥청 시험장 및 연구소의 시험연구사업 보고서에 기록된 작물 품종은 총 1만
2,000여 점으로, 1951년 집계된 2,000여 점과 비교해 약 6배가 증가했고, 1974년에
는 2만 1,600여 점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품종 수의 가파른 증가로 인해 매년 또는
격년으로 포장에서 활력을 갱신해 보존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
이에 농촌진흥청은 1974년 농촌진흥청 훈령 제172호로 「종자관리규정」을 제정
하고 시험국에 ‘종자관리실’을 설치했다. 이에 1976년 시험장연구소에 보존되어
있던 모든 종자를 ‘종자관리실’에 옮겨 보관하고 종합적인 관리를 시작했다. 이
처럼 본격적으로 관리하게 된 유전자원은 1985년부터 과장급 농업연구관이 종
자관리실 업무를 겸하게 함으로써 유전자원 연구가 더욱 강화되었고, 기존 「종
자관리규정」을 「유전자원관리규정」으로 개정하는 한편, 1987년 종자보존시설
인 ‘농촌진흥청 종자은행(RDA Gene Bank)’를 설립하며 유전자원 보존 연구기
반을 더욱 확고히 다졌다.
한편 종자관리실에서는 1990년까지 매년 최대 2만 5,000여 점을 수집했으며,
1991년 말에는 총 10만 7,000여 점에 이르렀다. 특히 1985년 전국의 시·군 농촌
지도소가 참여해 5,000여 점이 넘는 재래종과 함께 충주댐 수몰지구와 안동댐
수몰지구에서 자원을 수집하는 유의미한 성과를 거뒀다. 국외 자원의 경우에도
네팔에서 1,700여 점, 일본에서는 한국 재래종 보리 등 맥류자원 재도입, 미국에
서는 귀리 종자 등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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