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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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혁신 60년, 국민행복 100년
제4절
축산분야 기술 보급
축산진흥사업의 시작(1962~1970년)
01 축산발전의 사명을 짊어지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 우리나라의 가축 수가 극도로 감소했다. 영농에
필요한 가축 수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축산에 필요한 사료정책을 수립하는 것
조차 큰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정부는 축산재건을 위해 1953년 축산진흥 1차 5개년계획을 수립한 데 이어 1958
년부터 축산진흥 2차 5개년계획을 추진했다. 1950년대의 가축증식방법이란 외
국원조에 의한 도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외국의 개량종이 도입되어 비교적
단기간에 가축증식 성과를 달성했다.
1962년에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62~1966년)이 수립되고 축산장려 5개
년계획이 추진되는 등,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으로 근대화된 유축농업으로의 전
환점이 마련되었다. 농촌진흥을 촉진하려는 시대적 요청에 따라 1962년 농촌진
흥청이 발족했고 축산발전의 기틀을 마련하는 사명도 맡겨졌다.
품종 개량과 사양 관리
축산농업이 농업인들의 소득원이 되어주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하는 조
건이 가축의 우수한 품종이었다. 그러나 우리 농가가 사육하는 가축은 본래의 생
산능력을 발현하지 못해 종축 개량(품종 개량)사업을 당면 과제로 추진했다.
1967년에는 소고기 증산을 위한 정부시책에 따라 농촌진흥청이 육용우 1대 잡
종 생산지도를 실시했다. ‘애버딘앵거스종’ 육우를 한우와 교잡해 1대 잡종을 생
산했으나 이후 사업은 지속되지 못했다. 이 시기 대형종인 ‘샤롤레’ 수소를 한우
암소에 교잡한 1대 샤롤레 교잡종도 생산했는데, 순수 한우송아지보다 비육이
빨라 높은 가격에 거래되며 전국으로 보급되었다.
가축 사양 관리가 본격화된 것은 1960년대 후반으로, 시·군 농촌지도소에 농촌
한우·샤롤레 교잡우 육종 개량 진흥청 축산담당 지도사가 배치돼 읍·면 단위로 연평균 4회씩 연시회를 실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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