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7 - 산림조합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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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2
               제2장 _ 성장 | 미래를 설계하다                                                                    역대 회장과 산림조합




                       04                     산림조합법의
                                                             독립,



                                                    중앙회가 나아갈

                                          길을 찾다




                                          산림조합중앙회의 1950년대 조합 명칭은 중앙산림조합연합회였다. 제8대 회장을 역임한
                                          이응래 회장은 1956년 12월, 표고종균 배양시설을 갖춘 정릉의 특수임산사업소(현 산림버
                                          섯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발령받아 버섯 등 종균 연구에 전념했다. 그 후 지도이사와 사업

                                          이사를 거쳐 1980년 9월부터 중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정릉 시절만 해도 표고나 느타리 따위 버섯 이름조차 생소했다. 현장에서 버섯을 채취하고

                                          종균을 배양해 보급에 앞장섰다. 경기도 가평 지역의 산에서 직접 채취한 표고버섯을 재배
                                          하기 시작한 것이 처음이었고, ‘경기 1호’로 이름을 지었다. 그 다음으로는 지리산에 가서
                                          ‘산지 2호’를 재배했다.

                                          당시에는 버섯종균을 무상으로 공급해 주었고, 재배기술도 따로 가르쳐 주고는 했다. 이응
                      이응래                 래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6개월을 더 버섯연구에 매달리다가 돌아와 국내 버섯재배에 몰
                     제8대 회장               두했다. 산림조합중앙회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미국의 버섯연구소에서 연구해 달라는 부탁
                                          을 받았다. 버섯 기술보급을 위해 1983년부터 1988년까지 미국에 머물렀다.

                                          1980년 9월, 산림조합회중앙회 제8대 회장으로 일하던 시절에는 우리나라 전체 산림이 솔
                                          잎흑파리병으로 몸살을 앓았다. 이를 퇴치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돌이켜보면 봄철마다 송
                                          충이로 대표되는 산림해충의 창궐이야말로 산림보호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그래서 산에 송충이 천적을 증식하게 만드는 묘안을 내기도 했다. 이렇게 산림조합은 산림
                                          보호를 실행하는 간접적인 산림행정 조직이었다.

                                          1980년 산림법에서 분리한 산림조합법이 독립법으로 제정됨에 따라 대한산림조합연합회에
                                          서 산림조합중앙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이응래 회장은 1980년대 초반에 중앙회장직을 수행

                                          하면서, 1979년 시작된 제2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에 따른 경제림조림 육성에도 전력을 다
                      1980. 9.
                         ~                했다.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 때 미흡했던 사방사업을 시행하고, 경제림 80개 단지를
                      1983. 9.
                                          선정해 낙엽송・잣나무 등의 경제수종을 식재하는 등 국토녹화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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