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8 - 인천국제공항 4단계 건설사업 건설지 [브랜드북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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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은 건국 이래 단일지역 최대 역사라는 인천국제공항 탄생의 큰                   공정과 전체 공사기간에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에 총력을 기울였다.
            발자취로 이어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공항의 역사를 바꾼 순간이었다.                철망태에 3톤의 돌을 채워 쉬지 않고 바다에 투하했다. 초당 4미터가

                                                                  넘는 빠른 유속 때문에 투하가 중단될 경우 순식간에 철망태가
            최대의 난공사였던 방조제공사                                       떠내려가 그동안의 매립작업이 한순간에 헛수고가 될 수 있었다.
            1992년 11월 12일 기공식과 함께 부지조성공사에 착수했으나                   한 달여 동안 사투를 벌인 끝에 최고의 난공사였던 방조제공사를
            매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건설 초기 외부와 단절된 바다 위                   완료했다.

            섬 영종도로 들어갈 수 있는 육로가 없어 월미도에서 오랜 시간                    인천국제공항부지는 연약 점토층으로 형성돼 연약지반 개량공사가
            기다렸다가 배를 타고 중장비와 자재를 운반했다. 좁은 길이었다.                   필수였다. 매립층 아래 갯벌층까지 모래기둥(Sand Drain, SD),
            배에서 내린 후에도 현장까지 도로 사정이 열악해 대형장비는 일일이                  플라스틱보드(Plastic Board Drain, PBD) 등을 심어 물길을 내고, 그
            분해해 트럭으로 날랐다.                                         위에 항공기와 건물 중량 이상의 흙더미를 쌓았다. 갯벌의 수분이

            조수간만의 차가 9m나 될 정도의 악조건에서 방조제공사를 감행한                   물길을 따라 빠져나가게 함과 동시에, 지반의 강제침하를 유도했다.
            것은 국내에서 유례가 없는 도전이었다. 15톤 덤프트럭 100만 대                 건물 등 구조물이 설치되는 지역에는 강관파일을 3만 2천여 개나
            분량의 흙더미를 2년에 걸쳐서 바닷물 속에 쏟아부었다.                        설치했는데, 이를 일렬로 세우면 서울과 부산을 두 차례 왕복할 수 있는
            방조제공사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600m를 막는 끝막이(물막이)                   1,682㎞에 달하는 길이였다. 그 결과 갯벌은 최대 600톤의 육중한

            공사였다. 방조제공사를 끝내야 할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온                       항공기 하중에도 견딜 수 있는 단단한 땅으로 탈바꿈했다.
            상황이었다. 연중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적은 10월을 넘길 경우 후속                1999년 2월 1일에는 ‘인천국제공항공사’가 발족했다.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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