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6 - 인천국제공항 4단계 건설사업 건설지 [브랜드북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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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개항, 인천국제공항의 탄생

            Phase 1                                   제1여객터미널 및 제1·2활주로 건설                                   1992~2001
































            동북아 허브공항 건설의 시작                                       이 같은 긴박함 속에 정부는 수도권지역에 김포공항의 역할을 대체할

            1980년대 우리나라는 항공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86년                  국제공항의 건설을 추진했다. 우리나라와 세계를 연결하는 대표적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의 잇달은 개최로 국제선 여객 수가                 관문역할은 그동안 김포국제공항이 담당해왔으나 빠르게 증가하는
            급증했다. 1989년에는 해외여행 자유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세계 최고                항공수요를 따라잡기에는 힘에 부쳤다.
            수준의 항공수요 증가율을 기록했다.

            1980년대 말 동서냉전의 종식으로 세계는 시장개방과 세계화의 길로                 신공항건설의 터를 마련하다
            들어섰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이 타결되고, 1995년               1990년 6월 14일 신공항건설추진위원회는 영종도를 신공항 부지로
            세계무역기구(WTO)가 공식 출범했다. 1990년대 들어 글로벌시장을                결정했다. 영종도는 개발가능지역이 여의도의 18배 크기에 달했으며,
            통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해지자 세계 각국은 허브공항 선점을                    항로 양쪽이 모두 바다여서 소음 문제에서 자유로웠다.

            위한 공항 확장과 신공항건설 경쟁에 뛰어들었다. 동북아지역에서는                   국제공항이라고는 김포공항이 유일했던 1990년대 초, 인천 영종도에서
            일본 간사이공항, 홍콩 첵랍콕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이 치열한                  인천국제공항의 신설을 추진했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거셌다.
            선두다툼을 벌였다.                                            언론에서는 이런 정도의 거대한 공항이 우리나라에 필요한지 의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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