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7 -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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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04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들 테마사 | ‘제일’이 ‘제일’했다
‘1991 VS 2007’
제일은 자타공인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감정평가법인이다. 또
천신만고 1991
하나는 감정평가법인의 대형화를 유도한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 입안에
따라 이합집산과 합종연횡이 난무하던 감정평가업계에서 무(無)합병의
명맥을 이어왔다는 것이다.
3명이 뜻을 모아 출범한 제일의 시작은 소박했다. 그러나 감정평가업계
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에 따라 점차 그 규모가 커져
감에 따라 합동사무소는 눈 쌓인 비탈을 구르는 눈덩이처럼 인원이 늘
어났다. 1976년 10월 서울지역의 토지평가사 인원 기준이 7인으로 조정
되었고, 1988년 1월에는 토지평가사 합동사무소 구성 요건이 서울은 15인,
직할시 5인, 기타 3인으로 확대 강화됨에 따라 1980년대 후반 제일의 소
속 토지평가사 수는 17인까지 늘어났다. 당시 활동하던 전국 14개 토지
평가사사무소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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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하는 몇 안되는 회사이기도 하다. 당시 회사들 중 자생력을 잃은 곳
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규모를 키우지 못한 곳은 소형법인으로
명맥을 유지하거나 합병을 통해 새출발을 하기도 했다.
당시 제일은 토지평가사들이 선망하던 곳이었다. 그런 만큼 기준도 까
다로웠다. 제일의 가치와 철학에 공감하는 것은 기본이고, 토지평가사
와 공인감정사 자격증을 보유한 이들만을 선발했다.
순혈주의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자리를 지켜가겠다는
독자적인 행보를 멈추지 않은 것은 1호 법인이라는 자부심을 지키겠다
는 구성원의 신념이 한몫했다. 더불어 단순한 상징성의 수호가 아니라,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는 자신감도 그 신념을 지키게 한 원
천이었다.
하지만 신념은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리고 1991년 감정평가법인으로 재
출범하는 과정에서 최고라는 자부심에 상처가 나기도 했다. 「지가공시
법」이 제정되고, 1991년 7월 1일부터 감정평가법인 제도가 시행됨에 따
라 제일도 감정평가법인으로 전환을 준비하면서 뜻하지 않게 난항을 겪
었다. 감정평가법인 설립을 위해서는 40인 이상의 감정평가사를 확보해 Theme 1 | 제일을 읽는 7개의 시선
야 했는데, 이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업계의 상황을
간과한 채 최고라는 관성에 빠진 것이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