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2 -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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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02 보상평가의 선구자,
보상평가의 기준을 마련하다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제일은 감정평가업계에서 하나의 이정표였다. 최초로 이뤄진 토
보상업무의 선구자
지평가 업무에 투입되어 빠르고 정확한 업무 수행으로 타 토지평가 합
동사무소의 귀감이 되었다. 특히 초창기 댐 관련 보상업무는 제일이 그
중심에 있었다. 1970년대에는 정태경 평가사를 중심으로 댐 보상업무에
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댐 보상평가 기준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제일의 평가사들은 개척자
정신으로 업무에 임했다. 새로운 기준의 제정과 개발 못지않게 실사를
위한 업무 수행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과도 마주했다. 댐 보상평가 업무
의 지역이 접근성이 열악한 울창한 숲과 높은 산, 오지였기에 몸으로 때
우며 업무를 수행했다.
“댐 평가는 지리적 특성으로 접근이 쉽지 않았다.
142 보통 3번은 답사를 해야 했는데
수목이 무성한 곳에 길을 만들어가며
산속을 헤맨 것이 다반사였다.
어떤 평가사는 아예 깊은 산골에 있는
화전민 집에서 한 달 이상 숙식을 하며 조사를 벌였다.
현장조사 도면 확인에 정신이 팔린 평가사는
발을 헛디뎌 벼랑에서 굴러
목숨을 위협받은 적도 있다.”
이기주 평가사의 회고
고충은 그뿐이 아니었다. 며칠씩 산속을 헤매고 다니다 보니 몰골은 말
이 아니었고, 간첩으로 오인돼 경찰서에 끌려간 평가사도 있었다. 이런
외적인 어려움 외에도 보상비 산정을 둘러싸고 보상 대상자들의 민원에
도 시달려야 했다. 보상을 노린 투기꾼들까지 득세하면서 대민업무는 외
줄을 타는 심정이 되곤 했다. 1974년 6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보상
노린 브로커 몰려’라는 기사에는 이런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50 Years History of JE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