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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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자가 만든 감정평가업 등록 제1호인 제일토지평가사합동사무소가 탄
생하는 순간이었다. 테마사 | ‘제일’이 ‘제일’했다
제일은 1호 합동사무소답게 그 면면도 화려했다. 한상의 평가사
감정평가 업무의
는 건설부 이수과, 이기주 평가사는 영남 이리국토건설국 경리계, 김헌
구심점이자
달 평가사는 국토건설청 경리계에서 근무했는데, 토지평가사 제도 도입
도약대
이전 건설부가 수행한 다양한 보상 실무를 담당하며, 우리나라 보상업
무의 틀을 다지는데 공을 세운 이들이었다. 이들 세 사람은 제일이라는
간판 아래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상황에서 첫 토지평가사라는 자긍심
을 동력 삼아 무한경쟁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선택이 응
원만 받은 것은 아니다. 안정된 직장을 떠나 볼모지나 다름없는 평가업
계에 투신하려는 그들을 만류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실제로 안정적 직장을 버리고 토지평가사사무소를 개업했던 이들 가운
데에는 초창기 부족한 일감으로 인해 후회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고, 이
직을 하거나 원래의 직장으로 돌아가는 평가사도 있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제일은 평가업계의 구심점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제일의 첫 합동사무소는 광화문의 정부종합청사 인근인 종로
구 통의동 147의 1에 사무소를 차렸다. 업무가 건설부와 긴밀한 관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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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던 만큼 정부종합청사 지척인 김봉수 작명원 건물에 사무소를 마련했
다. 이후 제일은 토지평가사 1호 개업 합동사무소라는 상징성에 그치지
않고, 1기 토지평가사의 구심점 노릇도 했다. 지가조사·평가 업무에 착
수하기 전 국내 부동산 관련 석학들을 제일합동사무소로 초빙해 강의를
열었으며, 이 자리에는 상당수 토지평가사가 참석했다.
제일은 건설부의 토지평가사 파견계획 수립에 따라 구미지역 파견을 앞
두고 당시 우리나라 감정평가 업계의 전문가를 초빙해 별도의 교육을
이수하기도 했다. 아울러 당시로는 국내 유일의 부동산 대학원을 설치
한 건국대의 명망 있는 교수진에게도 교육을 받았다. 1973년 5월 2일 건
설부 훈령으로 ‘표준지의조사평가기준’을 제정했으나, 기준지가 조사와
평가 업무를 수행할 기초 자료나 처리 절차에 대한 제도적 장치나 규정,
기준이 미흡했기 때문에 이를 좀 더 표준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일은 토지평가사들의 구심점 역할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제시
했다. 이기주, 정태경 평가사는 ‘분묘이장비 보상평가 이론’, ‘하천부지
보상평가 기법과 이론’을 개발했으며, 정태경 평가사는 ‘댐 보상평가 이
론’에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수몰지 보상 이론 정립에 기초를 닦기 Theme 1 | 제일을 읽는 7개의 시선
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