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62 -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P. 162
01
新주거문화의 등장과 감정평가
김정선 감정평가사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조선의 600년 역사에서 건축물을 대표하는 것으로 종묘를 꼽을 수 있다. 종묘는 조선왕들의 신주를 모시는 장
소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종을 시작으로 조선왕조가 끝날 때까지 왕과 왕후들의 영혼을 담고 있다. 가로로 길
게 뻗어져 있는 형태의 목조로 만들어진 단층건축물이다.
단순하면서도 위엄이 있는 건축물로 그 엄숙함의 표현은 백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프랑크 게리가
종묘를 보기 위해 가족들과 한국에 여행을 왔고 “이 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들다”고 평가했
다. 조선의 왕궁이나 사찰 등 건축물들은 왕조의 시작에서 완성되어 이후 왕조가 끝나는 날까지 거의 변함이
없었다.
조선의 백성들이 거주하는 주거문화도 마찬가지다. 양반이 거주하는 기와집과 평민이 거주하는 초가집으
로 구분할 수 있다. 조선의 주거문화의 특징은 목조와 돌 그리고 흙을 주재료를 활용하여 이루어진 단층구
조다. 벽돌을 사용하지 않는 건축물로 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조선 말기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개혁개방을 시도했다. 대한제국은 서양식 건축물을 축조하여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 꿈은
한일합방으로 이룰 수 없었다.
162
해방 이후 한국전쟁으로 한반도는 폐허가 되었다. 문화재는 목조건물이 대부분이기에 화재 등으로 많이 유실
되었다.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인구가 도시로 몰려들었다. 소위 양옥집이 생겨나기 시작하였
다. 양옥집은 벽돌을 사용하면서 2층 이상의 구조를 갖춘 건축물이다. 하지만 양옥주택의 건축만으로는 도시
로 향한 인구집중을 감당하지 못했다. 도시의 건축물은 고층화되었다. 철근 콘크리트 건축의 발달로 공동주택
이 고밀화되었다.
50 Years History of JE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