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1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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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 농촌진흥사업
4월 경기도 수원에 터를 잡은 지 52년 만에 수원 시대를 마감했다.
이어 국립농업과학원이 2014년 8월 전북혁신도시로 이전하는 등 농촌진흥청
소속기관들이 속속 신청사 입주를 시작했다. 국립식량과학원은 2015년 5월 전
북혁신도시에서 청사 이전 기념식을 갖고 제2의 녹색혁명을 이룰 것을 결의했
으며, 국립원예특작과학원도 같은 달 전북 완주 신청사에서 공식 개청식을 갖고
제2의 백색혁명 성취를 위한 비전을 전 임직원이 공유했다.
농촌진흥청 수원 청사
수원시 서둔 일대의 역사적 의미
02 농촌진흥청 청사가 소재했던 수원시 서둔 일대 농업 역사의 기원은 청
동기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숭실대학교 박물관에서 학술조사
를 실시한 결과, 청동기 시대와 초기 철기 시대 다수의 유물을 발견했다. 특히
한반도 최초로 초기 철기 시대의 5호 주거지에서 터널형 화덕자리가 발견되었
다. 해당 주거지에서는 볏짚이 섞인 점토와 목탄, 시루가 함께 출토되어 당시 농
경생활이 이루어졌음을 추정하게 했다. 또한 초기 철기 6호 주거지에서 출토한
점토판에는 다량의 탄화미가 붙어있어 당시 인근 저습지대에서 벼농사가 행해
졌다는 근거가 되었다.
수원 서둔동 청사를 비롯한 인근은 조선 제22대 왕인 정조 시대와도 인연이 깊
은 곳이었다. 정조는 1799년 당시 가뭄으로 농사가 어려워지자 최대 규모의 저
수지인 축만제와 축만제둔, 즉 서호와 서둔을 조성하게 된다. 인공호수인 축만
제는 ‘천년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이름 그대로 1960년대 이후 우리나
라 농업 생산력 향상을 이끌어가는 본원지가 되었다. 가뭄이 들어도 농사를 지
을 수 있는 정조 시대 농업개혁의 현장을 농촌진흥청이 이어받은 것이다.
대한제국 시대인 1906년에는 수원 서둔에 권업모범장을 개장했으나, 일제강
점기 동안 식민지 농업정책의 일환으로 농업지도가 이루어졌다. 권업모범장은
1929년 농사시험장으로 명칭을 변경했고, 해방 후인 1946년에는 미군정청 소속
의 중앙농사시험장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농촌진흥청이 설립되기 전에는 1957
년부터 농사원이 이곳에 자리했다. 존속한 시간은 4년에 불과했지만 농사원은
농촌진흥청에 많은 유산을 남겼다. 수원을 떠나기 전까지 농촌진흥청이 사용하
던 청사를 완공한 것도 농사원 후기 시기인 1961년이었다. 농촌진흥청은 2014년
전북으로 이전했지만, 수원 서둔 지역의 터와 건물들은 선사 유적부터 농업의
1957. 농사원 전통이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시키며 여전히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위 내용은 아래 자료를 참고해 기술되었습니다.
<농촌진흥청 창설 이전 서둔 일대 농업 관련 사료들>, 가축유전자원센터 운영지원실 김효진, 김준혁 교수 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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