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11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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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편 | 농업 연구
1972. 양잠 장려 행사에 참석한 육영수 여사 1963. 뽕 품종 재배 시험포
일제강점기에도 양잠이 장려되었으나 이는 수탈로 이어 품종 개량
졌고, 광복 이후 고치의 증산계획이 담긴 ‘산견 3개년계 ① 누에
획(1949년)’이 수립되지만, 한국전쟁 발발로 인해 무산되 누에는 실을 토하는 많은 곤충 가운데 사람의 생활에 유
었다. 이후 전쟁 여파가 이어지며 양잠농가는 급격히 감 익한 대표적인 견사곤충으로, 동물분류학상 절지동물문
소했다. 의 곤충강, 나비목에 속한다. 1945년 광복 이전까지 일본
1960년대 들어 경제개발계획 추진과 함께 침체했던 양잠 에서 육성된 누에 품종이 도입되었고, 광복 이후에는 독
도 1962년 제1차 잠업증산 5개년계획(1962~1966년)이 수 자적인 육종을 시도해 1950년대 백두×금강, 태백×낙동
립되며 발전의 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1971년 마무리 등과 같은 품종이 장려 품종으로 지정, 보급되었다. 1960
된 제2차 잠업증산 5개년계획(1967~1971년)까지 10여 년 년대에 들어 이전 품종보다 생실량 수준이 높고 사육도
간 중앙정부와 각 도가 80%를 보조한 가운데 총 13억 주 쉬운 설악×소양, 모란×대동 품종이 지정되어 1970년대
의 뽕나무 묘목이 전국에 심어졌다. 이어진 제3차 잠업 중반까지 널리 이용되었다. 특히 1968년 봄누에 품종으
증산 5개년계획이 마무리된 1976년 우리나라의 고치 생 로 지정된 잠103×잠104는 춘추 겸용 품종으로 고치 생산
산량은 약 4만 1,700t을 기록해 1940년에 집계된 약 2만 에 주역을 담당했다.
2,000t보다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같은 시기에 시작된 ‘농
어민 소득 증대 특별사업’에서 잠사업은 주요 사업의 하나 ② 뽕나무
로 지정되었고, 전국 12개 단지가 조성되었다. 뽕나무는 1906년 권업모범장 발족 이후 1960년까지 ‘금
한편 생산된 전량에 가까운 생사가 수출된 잠사업은 대표 상’, ‘당상’, ‘용천뽕’ 등 재래뽕에서 선발한 것과 일본에서
적인 수출산업으로 육성되었다. 1970년대 전반기에 견직 도입한 개량뽕과 대륙뽕 등을 이용했으며, 1942년 처음
물을 포함한 생사류의 수출량이 5,000t을 넘었고 3억 달러 으로 교잡육성에 의해 ‘수원대엽’이 육성되었다. 1960년
에 달했는데, 이는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4% 내외, 총 농림 교잡육성법에 따라 네 종류의 수원상이 육성되었고, 이
수산물 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요한 수출물 가운데 ‘수원상4호’가 기존의 개량뽕에 비해 수엽량이 높
자이자 대표적인 달러박스로서 우리나라 근대화에 결정 아 장려 품종으로 지정되었다. 뽕나무는 1960년대를 거
적인 공헌을 했다. 쳐 1970년대까지 다수성에 초점을 맞춰 육종이 이루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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