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제일감정평가법인 50년사
P. 37
제일은 창립 당시부터 우리나라 감정평가업계의 최고 평가기관으로 평가업계를 선도해
왔다. 본인도 1987년 수습평가사 시절부터 제일과 인연을 맺어, 어려운 역경과 고난 속 통사 | 최고를 향한 제일의 50년 여정
에서도 꿋꿋이 버티고 인정받는 평가사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나라 감정평가업
계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훌륭한 선배들에게 배우고 익힌 덕분이었다. 최고의 역사와 좋
은 선배님은 내게는 큰 자긍심이자 자부심이었다.
한편, 1988년 1월부터는 토지평가사 합동사무소 구성 요건이 서울은
15인, 직할시(광역시) 인접소 5인, 기타 3인으로 확대 강화됨에 따라
1988년 2월 제일의 소속 평가사는 17인으로 늘어났다.
공공사업 조사평가 업무의 수행
제일은 출범 후 공공사업 조사와 평가 업무를 수행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1970년대 경제개발의 집중화로 1980년대 들어 공업단지 조성
사업은 현저히 감소했다. 제일의 경우 1984년 인천 남동공단, 1989년
군장국가공업단지 조성사업에 참여한 것이 전부였다. 신도시개발사
업 역시 1974년 여천신시가지 조성사업 이후 명맥이 끊겼고, 1989년
분당과 평촌 등 대대적인 신도시개발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무려 15년
동안 신도시개발사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037
다행히 제일의 가장 강점으로 꼽히던 대규모 다목적댐 개발 조사평가에는
1980년대에도 여전히 강세를 보여 1983년 경남 합천댐을 시작으로 1987년
경남 남강댐까지 주요 다목적댐 평가 업무에 참여하며 실적을 쌓았다.
사회간접자본 및 주택사업 조사업무
토지평가사가 출범한 계기가 된 공공사업 조사평가 사업은 줄어들었
지만, 제일은 다양한 분야의 조사평가업무에 참여하며 성장세를 이어
갔다. 특히 도로나 주택, 토지구획, 택지개발사업 평가에 참여하며 업
무영역을 넓혀 나갔다.
1980년 1월 잠실동 1단지 구획정리 토지평가를 시작으로 삽교천 농업
개발 편입 토지와 지장물 평가, 제주국제공항 확장 편입토지 평가, 여
천 삼일항 배후지 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1981년 8월 24일에는 1971년에 이어 제2차 국토종합개발계획
(1982~1991)이 확정되었다. 2차 국토계획의 기본방향은 종래의 지역
권에서 대도시권 개념으로 개발전략을 전환했다. 특히 과밀화된 서울,
부산, 대구 등 대도시의 인구 집중화를 인정하고 대도시권으로서의 개 1장 | 감정평가 업계의 선도적 역할 수행
발 정비 전략을 구사하기로 했다. 아울러 조사지역을 광역권으로 묶어
서 광역적인 계획을 수립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