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수산가족 2025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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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SOOSAN [ ] 마음처방전 54
새해에는 새로운 시작을!
첫걸음을 떼는 데 도움을 주는 작품
마음처방 하나
청설(2024)
조선호 감독
청펀펀 감독의 대만 영화 〈청설〉(2010)을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청각장애인의 이야기
를 다룬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신만 빼고 모두 청각장애인인 가족을 둔 ‘여름’
과 부모님의 식당 일을 도우며 배달을 하는 용준과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 ‘용준’은
수수하고 선량한 ‘여름’을 처음 보자마자 한눈에 반한다. 그 후로 여름 곁을 맴돈다. 여
름이 동생과 수화(手話)로 이야기하는 것을 본 용준은 여름 또한 청각장애인이라고 착
각해 수화로 대화를 이어 나간다. 여름 역시도 용준이 수화를 하며 다가왔기 때문에
그가 청각장애인이라고 판단한다. 그렇게 이들은 말이 아닌 손으로 우정을 쌓는다.
이 작품은 청각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혐오, 진정한 소통을 다룬다.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가볍고 상투적인 대화가 아닌, 마음을 다해 누군가와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소통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관점을 주인공 ‘여름’에게 맞추면 새로운 것
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자신을 정확히 아는 것이다. 여름은 자신만 빼고
가족 모두 청각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죄책감을 갖는다. 이런 사실로 인해 그녀는 쉽게
‘나’를 잃고, 가족에 헌신하며 성심성의껏 이들을 돌본다. 특히 수영 선수인 동생 ‘가을’
을 끔찍이 아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름은 이런 마음으로 인해 정작 소중히 여겨야
할 자신의 삶을 놓치고 만다. 자신의 삶이 없으니 하고 싶은 것도, 꿈도 없다. 누군가는
그녀의 삶을 칭찬하며, 이런 사람이 있으니 세상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
다. 하지만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고 살아가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를 잃으면 세상을 모두 잃는 것과 다름없다. 이기적으로 자신을 내세울 필요까지는
없지만, 우리는 살아가며 ‘나’ 스스로를 돌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회사원인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새로운 것을 하기 전에 자신에게 먼저 물어볼 필요가 있다. 새로운 것은 멀리 있지 않
다. 나에게 질문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