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남해화학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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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사편
제7비료공장은
제1절
왜 추진되었나?
경제 선진국으로 가는 전쟁의 포화는 모든 것을 황폐화시켰다. 한국전쟁 후 우리 경제는 대외 원조를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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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학공업화의 꿈 해 겨우 지탱했다. 국민은 가난과 굶주림으로 신음했다. 1960년대 들어 정부는 자
립경제를 향한 시동을 걸었다. 1962년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착수됐다. 하루라도
빨리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선은 경공업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중화학공업
을 산업정책으로 추진하기에는 재정과 국가 인프라 등 모든 것이 열악했다.
1970년대, 정부는 중화학공업으로 시선을 돌렸다. 1960년대의 제1, 2차 경제개발
계획은 고용문제 해결, 산업구조 고도화, 수출 신장 등의 효과를 가져왔고, 우리나
라를 후진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올려놓았다. 이는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노동집약적 산업인 경공업 부문에 의존한 영향이 컸다. 그러나 경공업 제품의 수
출은 소득 탄력성이 낮은 데다 선진국들의 수입 규제, 후발공업국들의 추격 등으
로 성장의 한계가 보였다. 세계 전체 무역량도 중화학공업 제품의 비중이 급속히
증대되는 추세였다.
1980년대에는 개발도상국을 넘어서 경제 선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우리 경제는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경제 고도성장을 견인하는 것이 요구됐
다. 국민 번영의 시대로 다가올 1980년대를 향한 국가경제 건설의 웅대한 계획이
추진됐다.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산업구조의 혁신적인 개편을 통해 규모가
커진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건하게 다져나가게 됐다.
1973년 국력을 모아 힘차게 전진해나갈 국가적 과업으로 중화학공업 육성계획이
1973.04.28.
호남종합화학 기지 건설 관련 뉴스 수립됐다. 또한 정부는 중화학공업 부문별 건설계획(안)을 발표했다. 국무총리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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