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1 - 농촌진흥 6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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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 농촌진흥사업
제3절
시장개방화 시대,
우리 농가의 경쟁력을 높이다
농산물 시장개방과 농업기술지도(1980~2000년)
01 UR 협상 타결과 농업 현장 지도활동 강화
1980년대에 우리나라의 무역흑자가 누적되고 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커지자, 점차 무역 상대국과 통상마찰 문제가 심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의 수입개방 압력이 점점 구체화되었다.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 개선을 위해
1988년 입법된 「종합무역법」을 원용해 대외통상압력을 가해왔다.
1988년 한미통상협력 타결로 우리나라는 1989~1991년 동안 243개에 이르는 농
림수산물시장을 개방했다. 우리나라는 1986~1989년 사이 국제수지 흑자를 연속
기록했으며, 이로 인해 1989년에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국제
수지조항에서 졸업하게 되었다. 다만 8년간의 유예기간을 부여받아 연차적으로
농림수산물의 수입개방 예시계획을 수립,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농수산물 수입
자유화율은 1989년 76.1%에서 1994년 93.7%로 급격히 증가했다.
우리나라가 1984년 국내 소값 파동으로 소고기 전면 수입제한을 단행하자,
1989년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등 축산물 수출국들은 GATT에 이를 제소해 분쟁
해결 패널을 구성했다. GATT에서는 한국에 소고기 수입 재개를 권고하는 한편,
수입 재개계획과 수입물량에 관해 수출국들과 쌍무협의를 가질 것도 권고했다.
1990년 한·미, 한·호, 한·뉴질랜드 간 소고기 협상을 진행한 결과, 우리나라는 소
고기 수입쿼터를 늘려나가기로 결정했다.
1994년의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협상은 모든 비관세장벽을 철폐해 관세로
전환하고 시장접근 기회를 확대시켰다. UR 협상으로 쌀을 제외한 나머지 품목은
관세화와 상한설정관세를 통해 수입을 개방하고 시장접근물량을 허용했다.
우리나라는 국제수지조항 졸업과 함께 UR 협상 타결에 따른 연속적인 수입자
유화 조치로 인해 농산물 수입이 크게 늘어나고 수입선도 다변화되었다. 특히
중국 농산물 수입이 급증했는데, 이 과정에서 저급 농산물이 무분별하게 수입되
어 국내산으로 위장 판매됨으로써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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