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3 - Yuhan Now 2021 Vo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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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대학교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다 꿈을 향해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나아가라
졸업생 유한나우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유한나우 직업으로서 군인은 어떤 매력이 있나요?
김창수 동문 안녕하세요. 저는 전기과 84학번 김창 김창수 동문 최근 군인이 직업으로서 인기가 높아지
‘최초 장군’을 만나다
수입니다. 육군 제1기갑여단장, 제5군단 부군단장을 고 있습니다. 국가를 지키는 병역의무를 수행하면서
역임하고 지난 1월 31일 군을 전역했습니다. 5월부 공무원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꽤 안정적인
유한이라는 터 포천시청 민군정책기획관과 포항공대 전자공학 직업이죠. 아직 진로를 확실하게 정하지 않았다면
부 겸임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군 간부도 생각해 보길 추천합니다. 법정 근무시간
배움의 전장에서 유한나우 오랜 기간 한 분야에서 정진하며 장군의 을 준수하고 인권 존중과 복지 등 직장으로서의 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또 본인이 열정만 있으면
김창수 동문 어릴 적에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부모 군에서도 충분히 꿈을 실현하면서 훌륭한 인생을 만
치열하게 님께 경제적인 부담을 드리지 않기 위해서 군인이 들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군에서 학부, 석사, 박사과
꿈을 실현하세요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제 고향은 원래 전남 함평이 정을 전부 공부했습니다. 장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에요.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분은 육군3사관학교에 도전하고, 부사관이 되고 싶
김창수 동문 (전기과 84학번)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를 왔어요. 부모님께서는 일 은 분은 부사관학교에 도전해보세요.
용직으로 근무를 하셨고 저는 중학교 1학년부터 부 유한나우 지난 2월 학교에 방문하셨다고 들었습니
모님 몰래 신문을 배달하고 군고구마를 팔면서 용돈 다. 소감이 어떠셨나요?
을 마련했어요. 새벽에 많은 사람이 부지런히 일하 김창수 동문 2년 전 대통령께서 졸업식에 방문했다
는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야겠다고 는 소식을 듣고 뭉클했었습니다. 기대감을 안고 학
생각했어요. 그때 쌓인 경험과 가치관이 저를 장교 교를 방문했을 때 생각보다 훨씬 더 발전한 모습에
로, 장군으로 만들어준 것 같습니다. 감개무량했습니다. 제가 다닐 때는 전기과를 포함해
유한나우 유한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 10개 학과에 1,500여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무려 6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언젠가 나요? 또 유한대학교에서의 배움이 인생에 어떤 도 개 학부에 학과도 34개로 늘었더라고요. 학생 수도
해야 할 일이면 지금 바로 하라.” 김창수 동문은 움이 됐나요? 2천 명이 훨씬 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지면을
언제나 그랬다. 주저 없이 항상 적극적인 태도로 김창수 동문 이런 말 하기 부끄러운데, 사실 전 학 빌어 설립자인 유일한 박사님의 ‘정직, 성실, 나눔’이
과 공부는 뒷전인 학생이었어요. 육군3사관학교라 라는 유지를 잘 받들어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
솔선수범하고 모든 일에 열정을 쏟았다. 35년 군
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 거기에만 전념했었거든요. 성하고 학교를 발전시키고 있는 김현중 총장님을 비
생활을 하며 장군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그리고
그래도 전기과에 재학하면서 배운 옥내외 배선 작 롯한 교수님들과 교직원분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새로운 삶의 출발선에 선 지금도 마찬가지다.
업이 군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특히 야전에서 유한나우 학생들이 취업과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습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훈련할 때 많이 활용했습니다. 나아가 육군3사관 니다. 한 마디 해주신다면?
나아간다.
학교 전자공학과에 편입 후 졸업 후 방공포병 장교 김창수 동문 명확한 꿈을 가지고 그에 따라 인생의
시절 레이더 부대에서 근무할 때 전자회로를 자유 목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제가 OO대학교사법행정
자재로 볼 수 있었던 게 군 생활에 큰 도움이 됐습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니다. 덕분에 지금 포항공대 전자공학부 교수가 될 런데 법대를 졸업한 학생 중 손에 꼽는 몇 명만 관련
수 있었고요. 기업으로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다시 공부를 하거
유한나우 아내인 김희숙 여사님도 우리 학교 식품영 나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는 걸 봤습니다. 대학
양학과 84학번 동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두 분의 인 4년 동안 명확한 꿈이나 목표가 없었던 결과겠지요.
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대학시절은 사회로 가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머나먼
김창수 동문 유한대학교 재학 시절 ‘이즘’이라는 스 인생의 시작을 뜻하지요. 그래서 명확한 자신의 꿈
포츠 미팅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저는 체 과 목표를 가지고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고 학업에
육부장이었고, 아내는 여성체육부장이었는데 운동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여유도 가지며
도 잘하고 꾸준히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었죠. 자주 친구들과 학창 시절을 즐기세요. 그리고 시간을 모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랑에 빠졌고 그때 아내가 아 여행을 많이 해보세요. 여러분을 미지의 세계로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격려를 해준 덕분에 유한대 안내하면서 창조력과 창의력을 키워줄 겁니다. 후배
학교 졸업 후 육군3사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 여러분 자신의 적성을 고려해 꿈을 선정하고, 유한
다. 그리고 88년에 결혼해서 지금까지 서로 의지하 대학교를 꿈을 이루기 위한 전장으로 생각하며 치열
며 살고 있습니다. 하고 정열적인 삶을 살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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