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수산가족 2024 WI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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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문종필 만화평론가
마음처방
둘
카렐 차페크 작가의
『RUR-로숨 유니버설 로봇』
“가끔 미쳐버려요. 마치 뇌전증환자처럼, 아시겠어요? 그것을 우리는 로봇 경련이라고 하죠.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다 부수어 버리고. 제자리에 서서 이빨을 갈지요. 그런 로봇들은 모두 창고로 보내
집니다. 불량품이거든요.”
‘로봇’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체코 출신 작가 카렐 차페크의 『RUR-로숨 유니버
설 로봇』(우물이 있는 집, 2021)에서 확인할 수 있는 말풍선이다. 이 작품의 세계관은 로
봇을 만드는 시설 장비를 갖춘 채, 로봇을 만들어 노동력을 현격히 줄이려는 인간의 마음
을 표현했다. 생산된 로봇 대부분은 특별한 결함 없이 만들어져 인간을 위해 봉사한다. 하
지만 극소수의 로봇은 ‘불량품’으로 취급된다. 인간의 일을 돕기보다는 ‘경련’을 일으키기
도 하고 갑작스럽게 폭력성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런 존재를 ‘불량품’으로 부른다.
그런데 정말로 이 로봇이 불량품일까. 그렇지 않다. 이 로봇은 자신과 같은 날, 같은 부품
으로 만들어진 ‘로봇’이 분해되는 상황에 놓이자, 로봇을 생산한 연구자에게 그 ‘로봇’을
분해하기보다는 자신을 분해해 달라며 가슴을 풀어헤치는 존재이다. 즉, 사랑하는 누군
가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인간의 마음을 품은 로봇인 것이다. 이 로봇은 두
려움을 모른다.
그렇다면 카렐 차페크의 이 장면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로봇의 인권에 대
해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각자 그만의 사연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분명한 것은 개별적인 존재의 ‘가치’를 중요시했다는 점이
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불협화음이 일어나는 경우가 잦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여길 일이 아니다. 어느 한 조직에서 일어나는 불협화음이야말
로 어쩌면 이곳의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주는 순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누군가를 문제 삼기보다는 한 번 정도 주변 상황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카렐 차
페크의 『RUR-로숨 유니버설 로봇』에서 로봇 연구자는 사랑하는 동료를 분해할 수 없다는
로봇의 말을 듣고, 이들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용기 내 문제 제
기하는 직장 동료의 말을 무심코 외면할 수 없는 이유다. 그에게는 보다 더 나은 해결책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