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5 - 수산가족 2022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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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되어 있고, 말을 걸어 대화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           두 번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김정철(김정은의 형)의 에릭 클랩튼의 런
               부분에 대해서는 주 모스크바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정기적으로 경고               던 콘서트 의전 이야기다.
               를 했었다) 다만 먼발치에서 서로를 확인하고 각각 대한민국, 북조선             어느 날 책의 제목인 3층 서기실–실제로는 청와대의 비서실과 유사–
               각자의 위치만 다시 상기했을 뿐이었다. 지나침을 넘겨버리기엔 너무              에서 태 공사에게 비밀리에 연락을 취해왔고, 그 내용인즉슨 “에릭 클
               아쉬워서일까? 그 당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어떻게 살고             랩튼 공연 최고 좌석으로 6장 예매하라”였다. 누가 오는지는 적혀있지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고, 그들을 통제하는 주체사상, 더 나아가 마             않았지만, 내용만 보고 김정철이 온다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이후 김
               르크스-레닌주의 관련 원문 서적을 찾아보기도 했다. 본 서적은 북한             정철의 방문 전부터 준비한 이야기, 새벽에 김정철이 바지 세탁을 부
               의 전 외무성 관료에게 듣는 실제 북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로 한 장,            탁해 24시세탁소를 찾기 위해 온 런던 바닥을 뒤진 일부터 공연 관람
               한 장 넘기며 읽는 동안 우리가 몰랐던 북한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제            후 출국까지, 그 61시간 동안에 벌어진 별의별 일들을 기록해 두었다.
               공하지만, 이외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희로애락에 대한              사실, 이 에피소드의 핵심은 김정철의 출국 이후에 나오는데, 모든 영
               이야기 역시 담고 있어, 새삼 사람 사는 곳은 정말 별반 다르지 않구            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태 공사의 아들이 BBC를 통해 김정철이 공
               나 생각했다.                                           연을 보러 런던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아버지가 어디 가셨나
                                                                 했더니 김정철을 안내하러 가신 거네요” 라며 냉랭하게 말했던 것이
               본 도서의 저자인 태영호 전 공사는 1962년 평양시 태생으로 소학교            었다. 북한에서 김정은의 지시를 직접 받고 과업을 수행했다면 칭송을
               부터 평양외국어학원에서 공부하며, 이후 평양국제관계대학, 중국 베              받는 게 당연하지만, 아이들의 눈이 정확했을까? 실제 모든 것을 제한
               이징외국어대학 영문학부 졸업까지 철저하게 외교관 양성 코스를 밟               하는 사회에서 인민들에게는 충성과 희생만 강요하고, 정작 본인들은
               은 엘리트였다. 이후 1988년부터 유럽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으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 아이들이 울분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나, 해외에서 근무하며 정확한 세상을 바라본 것이 기회였을까, 북한             이후 며칠 동안 김정철을 보좌했던 자신이 창피했다고 기록했다.
               체제에 싫증을 느끼고 이내 탈북을 결심하게 된다. 최대한 많은 경험
               과 이야기를 책 속에 담으려고 했던 노력이 느껴지며, 이를 위해 에피            이처럼 북한 사회는 한민족이라고 말하는 우리 생각과 별반 다른 것
               소드 하나 하나가 길지 않고, 간략하게 구성이 되어 있다. 이 중에서 마          같지 않으면서도, 정반대로 이념의 특수성, 계급, 인권문제 등 절대로
               음에 남고, 재밌었던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공존하는 곳이다. 이 때문에 매번 상호 간 문제
                                                                 에 봉착했을 경우 해답을 찾기가 더욱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요즘에
               첫 번째 에피소드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다.                          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무력시위가 지속하고 있으며, 이에
               태 전 공사에게는 두 명의 아들이 있으며, 첫째는 북한에서 그리고 둘            대항하기라도 하듯 ‘반공’이라는 단어가 한 기업가의 SNS를 통해 유행
               째는 덴마크 주재 시에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첫 해외 발령           처럼 번지고 있기도 하다. 80년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지만, 현재
               지는 덴마크다. 첫째가 6살 때였는데, 당시에 해외발령 시 본인이 받아           남북관계에 있어서 우리의 소원은 무엇일까?
               야 하는 간부사업(사상 검증) 제외하고, 자녀조차 마음대로 해외에 데            대한민국 헌법은 제1조 1항과 2항에 각각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
               리고 나가지 못하는 제약이 있었다. 중앙당에서는 “수령님이 아이의              며,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
               성장 과정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교육이 중요함으로 외교관 자녀들이               고 명시하고 있으나, 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인민학교 교육은 조국에서 받아야 한다고 교시하셨다. 아이를 평양에              제3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남기고 가라”고 했다. 문제는 당시 첫째는 세 살 때부터 얻은 병으로            국가건설과 활동의 유일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고 되어 있어 새
               심하게 앓고 있었으며, 태 공사는 부모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           삼 이와 같은 차이를 명확하게 해준다. 어쩌면 책에 포함된 내용은 북
               해 당을 설득했다고 한다. 북한이나 그 어느 곳에서든 자식에 대한 부            한 외교관이었던 한 사람에 대한 자서전 혹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
               모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다는 걸 확인 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뿐           인 국가에 대한 폭로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
               만 아니라 이후 탈북을 결정하게 된 계기 역시 자식에 대한 사랑에서             속적인 ‘다름, Difference’에 대해 인지하게 하면서, 현실적으로 ‘통일이
               비롯됐다고 한다.                                         된다면 과연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에 대해 반문하게 만든다.


               vol. 21                                           65                              SOOSAN Famil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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