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7 - 수산가족 2022 Sp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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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다. 8시네” 본격적으로 씻는다. 씻고 나서는 책상 바로 옆에 있는 침대에
첫 번째는 ‘공간의 영향력’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던지 ‘공간’ 안에 머무 잠깐 눕는다. 그리고 또 폰을 만진다. “정신을 차리니 12시네” 자야 할
른다. 그것이 실내이든, 실외이든, 가정집이든, 사무실이든 말이다. 이 시간이다. ‘하루가 왜 이렇게 짧을까? 내일부터는 영어공부도 좀 하고,
런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은 무엇이 있을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아쉬운
두 번째는 ‘생활방식의 개선’이다. 현재 숙소생활을 하다 보니, 어지르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이 생활이 반복된다. 이 얼마나 슬
고 엉망진창인 숙소에서 내 하루의 패턴이 보이게 되었다. 그것은 건 픈 현실인가. 내가 만들어 낸 공간이지만, 다시 공간이 나를 무기력하
강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유익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 보 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니 제한된 공간을 활용해서 조금 더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었다. 결국,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간과할 수준이 아님을 알게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지금 내가 머무는 숙소를 넘어, 미래에 내가 생 되었다. 거기에 더해 코로나19는 사람들 간의 거리를 늘려놓았다. 이
활할 공간에는 어떤 곳이며,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지게 되었다. 렇게 늘어난 사람들 간의 거리는 공간의 밀도를 낮추게 되었고, 공간
코로나19라는 시대변화는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킬지에 대한 ‘궁금함’ 의 밀도가 낮아짐에 따라 사회적 관계도 약화되었다. 결국, 우리의 대
이다. 인관계를 소원하게 했다는 것이다. 학교는 공식적으로 비대면수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부의 회사는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먼저 공간의 영향력에 대해 생각해보자. 코로나19 이전에는 우리가 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증가하며 우리의 소비 트렌드 또한 오프라인에
떤 건물을 들어가려고 하면, 정문이든, 옆문이든, 들어갈 수만 있다면 서 온라인으로, 여행(공간의 소비)에서 물품의 소비로 급속하게 변화
다양한 입구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시작되고 했다. 그렇게 도시의 활력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사그라들고 있다.
나서는 입구와 출구의 구분이 명확해지게 되었고, 나머지 문들은 대개
사용이 금지되었다. 예를 들어보자면 어느 날, 어떤 건물의 방문자 출 저자는 도시에는 사람들이 공통의 추억을 만들어 주는 ‘공짜로 머물
입관리를 위해 정문의 왼쪽은 ‘입구’로, 오른쪽은 ‘출구’로 사용하게 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 공간에서 연령대를 막론하
었다. 이는 문에 입구, 출구라고 A4용지를 붙여놓기도 하고, 입구와 출 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며 공통의 추억을 나눌 기회의 장이 된
구를 가르는 라인을 세워놓기도 한다. 이렇게 규칙이 생성됐다. 그러 다는 것이다. 이른바 ‘소셜믹스’라는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때를 돌아
면 건물을 들어가려는 사람들 몇몇이 그 룰을 따르기 시작한다. 뒤따 보면 그때는 동네 공원, 광장, 치킨집 어디를 가든지 모두가 하나 되는
라 들어가는 사람은 당연히 앞사람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공적 공간에서의 공통된 경험과 우연한 만
이렇게 점차 많은 사람이 따라 하게 되고 이것은 깨트리기 어려운 하 남은 개개인에게는 새로운 경험과 인간관계를 넓히는 장이 되고, 사회
나의 당연하고도 공공연한 암묵적인 ‘규칙’이 된다. 그렇게 코로나19 적으로는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 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방역지침이 생성되었다.
간단한 예시지만, ‘규칙 생성 - 소수의 인원이 규칙을 수용 - 점차 많은 이렇게 코로나19는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력에 변화를 주었고, 공
사람이 수용 - 규칙의 정착화’ 순으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공간을 간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런 변화의 시대에서 지금 내가 속한 업무,
활용한 보이지 않는 넛지의 힘이 작용한 사례다. 생활방식이 급격하게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미래를
미리 알고 대비하는 것과 그냥 흘러가는 대로 맡기는 것에는 큰 차이
저자는 종교 또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기 위해 사용한 공간적 요소로 가 존재할 것이다.
‘계단’과 ‘벽’을 이야기한다. 화자와 청자 사이에 높이를 다르게 함으로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집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써,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이 많은 사람의 시선을 받고, 낮은 위치의 사람 공간을 구성했지만, 그 공간이 다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
에게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벽으로 외부와 다. 하지만 저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것은 우리의 마음 먹기에 달렸다
의 공간과는 다른 그들만의 공간을 생성함으로 공동체 의식 강화를 도 고 생각한다. 그것이 우리와 네모난 수박의 차이이지 않을까. 우리가
모한다는 것이다. 그런 기준에서 봤을 때 내가 머무르는 숙소는 패턴 다시 우리를 둘러싼 공간을 변화시키고 더 나은 삶을 살아내기를 바란
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너저분하지만, 이 너저분함이 ‘게으름의 패 다. 다음의 문장처럼 말이다.
턴’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다. 퇴근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책상 의자 ‘사람이 집을 만들고, 집이 다시 사람을 만들지만, 우리는 다시 더 좋은
에 앉아서 폰으로 넷플릭스를 보면서 저녁을 간단하게 해결한다. 그리 집을 만들 것이다.’
고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보던 드라마를 마저 본다. “아, 시간이 벌써
vol. 21 67 SOOSAN Family Magaz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