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수산가족 2024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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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OSAN [        ]                  100년 아이템                                54




                                     마시는 소화제의 대명사,
                                      ‘부채표 활명수’ 이야기























                        국내 최초의 신약이자 브랜드인 ‘활명수’는 조선 말부터 시작되어 일제강점기를 거쳐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병 가운데에 자리잡은 빨간색 ‘부채표’는 활명수의 상징으로서,
                 소화제의 ‘원조’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물’에서 청량한 ‘국민 소화제’에 이르기까지,
                     130주년을 향하는 시간 동안 우리의 곁을 굳건히 지켜온 부채표 활명수의 역사를 소개한다.





            최초의 신약, ‘부채표’를 달다
            1897년, 궁중 선전관이었던 민병호 선생은 궁중에서만 복용되던 비방을 국민에게도 널리 보급하고자 궁중 비방에 서
            양의학을 접목하기로 했다. 그리고 여러 실험 끝에 창출, 진피, 후박 등의 전통 약재와 계피, 정향, 적포도주, 장뇌, 증류
                                        수 등을 혼합한 최초의 활명수를 만들어냈다. 이후 민병호 선생은 아들 민강
                                        선생과 함께 동화약방을 설립하며 활명수를 대중화하는 데에 힘썼다. ‘생명
                                        을 살리는 물’이라는 의미의 활명수는 그 이름에 걸맞게, 급체와 구토 증상으
                                        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던 당시 사람들의 만병통치약이었다.
                                        초기의 활명수는 큰 병에 원액을 담아 판매하는 형태로 지금과 달리 물에 희
                                        석해서 마셔야 했는데, 당시에는 달여 먹는 탕약이 전부였기 때문에 보다 간
                                        편한 복용법과 뛰어난 효과를 지닌 활명수는 비싼 가격에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한 상품이 유명해지면 그와 비슷한 제품이 우후죽순으로 생
                                        겨나게 마련이다. 활명수 역시 계속해서 등장하는 유사 제품과 경쟁해야 했
                                        다. 동화약방은 유사 상표 등장을 막기 위해 1910년, ‘부채표’를 상표 등록하
                                        게 된다. 이는 상표권이라는 개념이 잡혀 있지 않았던 한국에서 최초의 상표
                                        등록 사례이며, 이때 등록한 ‘부채표’는 오늘날까지 활명수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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