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0 - 남해화학 50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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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화학 50년사
          남해화학 50년사



          남우회 회원들의 한마디






                 “  1974년 출범 당시 남해화학의 위상이 최고였다. 특히 남해화학 여수공장은 세계 10대 공장 중의
          하나로 손꼽혔다. 남해화학은 미국의 최고 비료회사인 아그리코와 합작사로 출범했는데, 100만 톤이 넘는
          비료공장은 세계적으로 드물다며 아그리코도 놀랄 정도였다. 남해화학은 우리나라 최고의 비료회사였던 충
          주비료 출신들로 대부분 이루어져 비료업계에서 경쟁사가 없었다. 한미합작회사로서 봉급 수준도 국내 최고
          수준이었기 때문에 남해화학의 거북선 뱃지를 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공채를 하면 전국의 인재들

          이 남해화학에 지원했고, 외부에서도 남해화학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봐 직원들의 자긍심이 대단했다.”


                 “여수공장 건설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당시 비료공장을 지을 부지가 없어서 바다를 매립
          해 공장을 건설한 것이다.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간척지에 부지조성 공사를 하면서, 바닷물의 유
          입을 막기 위한 물막이 공법으로 거대한 말뚝 백여 개를 때려박았다. 우리나라 건설 역사에서 이런 공법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건설업계의 시선을 끌어모으며 국내 건설사들이 공사 현장을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마
          침내 거대한 부지를 조성하는 데 성공하고 공장이 위용을 드러내기까지 차곡차곡 대 역사가 만들어지던 기
          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남해화학은 비료공장을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연차보수를 진행한다. 그런데 공장을 한 번 녹다운
          시키면 투입한 원료를 모두 날리게 되니까 수십억 원에 이르는 손해가 발생했다.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우

          리가 공장을 일년이 넘게 계속 돌렸다. 아그리코에서는 공장을 그렇게 지속해서 가동하면 안 된다고 만류
          했지만, 세계적인 규모의 공장을 가동해오면서 남해화학은 이미 우리의 기술력에 특화된 전문 인력을 구축
          하고 있었다. 남해화학이 무고장 운전으로 공장을 안정적으로 가동하면서 아그리코도 남해화학의 엔지니
          어들이 최고라고 인정해주었다. 이런 헌신적인 애사심과 남다른 기술 역량이 모아져 남해화학의 오늘을 만

          든 열정의 발자취로 아로새겨졌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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